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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보다 더 가벼울 수는 없다: a very simple Thought on heavy Topics

HERstory 우리 정여사124

23년 동짓날의 추억 만들기 : 가신 지 49일째 [23년 동짓날의 추억 만들기: 가신 지 49일째] 영하 8도. 12월 22일. 밤이 제일 길다는 동짓날. 우리는 정여사를 추억하며 다시 만난다. 정여사는 무교다. 한 번도 종교에 귀의한 적이 없다. 친구 따라 교회도 성당도 절에도 신앙심을 위해 간 적이 없다. 정여사의 자녀들은 친구 따라 강남/종교시설을 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현재는 귀의한 종교가 없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사람이라 정여사 가신 지 49일 되는 오늘은 나름 기념을 하기로 한다. 형식이 그 무엇이건 간에 그녀를 다시 추모하고 윤회의 사슬을 끊기를 소망해 주고자 한다. 윤회를 끊기 힘들다면 현생보다 나은 삶을 소망해 드린다. 우리 정여사 정도면, 윤회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게 우리 자식들의 평가이지만, 본인 스스로는.. 2023. 12. 22.
수선 여왕 정여사: 수선 거리를 그대 품안에 [수선 여왕 정여사: 수선거리를 그대 품 안에]정여사는 두려움이 없었다. 뭔가 고장이 나거나 수선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순식간에 대책을 세우고 순식간에 일처리를 하셨다. 말이 나오면 바로 실행을 하고 있는 분이셨다. 그 점이 나와 가장 다른 측면이었다. 나는 생각을 하고 계획을 세우고 다시 생각을 하고 실행하는 반면, 정여사는 생각과 실행 사이에 시간의 간극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적확했다. 제사를 지낼 때 병풍을 세우는데, 제사 상이 혼자 옮기기 번거로운 큰 상이라 펼치고 정리하는 사이에 몇 번을 모서리로 병풍을 찧었다. 움푹 들어가서 보기가 상그러운데, 새로 구매를 하기엔 아깝고, 그냥 보기엔 난감한 그런 상처들. 정여사는 "조심 좀 하지"라는 야단도 할 법한데 일체 말씀이 없으셨다. 질책이 없었다. .. 2023. 12. 9.
긴 여정을 마쳤다: 선친 기제 아들네로 이관하다 [긴 여정을 마쳤다: 선친 기제를 아들네로 이관하다] 정여사가 주관하던 선친 기제사는 이제 그 긴 막을 내렸다. 1979년에 첫 기일을 시작으로 45년간 45회를 주관하셨다. 마지막인 올해에 정여사는 불참했다. 선친이 있는 곳으로 몸소 떠나셨기에 그러하다. 작년까지 정여사는 그녀가 혼자서 재료를 사고 준비했던 젊었을 때나 기력이 떨어져 몸소 제사 재료를 살 수 없을 때는 나를 포터로, 나중에는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주문만으로, 더 나중에는 네가 알아서 하거라라고 양보했을 때조차도 늘 주관하셨다. 시금치 다듬기와 콩나물 발 자르기는 늘 정여사 담당이었다. 최후의 순간이었던 작년까지도. 시금치 삶는 과정도 늘 감독하셨다. 시금치는 잘 다듬어야 달고 맛나고, 데치기를 잘해야 그 싱싱함이 느껴져서 늘 정여사의 도.. 2023. 12. 3.
디지털 알람시계 겸 라디오 [디지털 알람시계 겸 라디오] 정여사의 집에는 알람시계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벽에 가로 50 세로 80cm 정도 되는 벽시계를 전선으로 연결을 해서 아침 6시면 동네가 떠나갈 듯 굉음을 내도록 알람을 알리는 벽계를 아들은 개조해 주었다. 아파트도 아니었고 길 가 집이라 다른 집에 소음을 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우리에게는 굉음이었다는 기억이 있다. 어쩌면 옆집에도 들렸을까? 손재주가 많은 아들이었다. 그 아들이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사 온 알람시계가 이 디지털 기계이다. 40년도 넘은 이 디지털 라디오는, 라디오로서도 디지털이라 놀라웠다. AM/FM 라디오가 깨끗하게 나왔다. 알람 설정이 가능했다. 또한 밤과 낮에는 디지털의 빛의 세기도 조절할 수 있었다. 정여사에게는 보물같은 기계였다. 라디오로서의 역할은.. 2023. 11. 26.
소통의 습관: 아침 8시에 할 일이 없어졌다 [소통의 습관: 아침 8시에 할 일이 없어졌다] 우리 정여사가 큰 아들의 자식들, 즉 손자를 돌봐준다고 서울로 떠났을 때. 친구분들은 모두 고향에 사셨다. 한 마디로 아는 사람은 아들과 며느리와 손주들 뿐인 곳으로 길을 잡으셨다. 결혼부터 지금까지 대단히 해 준 것도 없는데, 애들이라도 봐줘야 한다면 고향을 떠나셨다. 마음이 짠해서 매일 아침 등굣길이나 출근길에 전화를 드렸다. 그래서 친구가 없어도 매일매일의 일과를 서로 주고받았다. 우리는 전화를 많이 한 사이라 할 수 있다. 그 버릇은 유학을 가서도 계속되었는데, 유학 시절엔 일주일에 한 번 한국 시간으로 금요일 아침에 통화를 했다. 일주일 간의 근황을 들었다. 정여사가 혼자임을 덜 느끼게 하는 조처였다. 물론 일상이 궁금하기도 했다만... 요양병원으.. 2023. 11. 20.
마지막 통화의 동문서답의 주인공은?: 녹음된 통화가 주는 위로 [마지막 통화의 동문서답의 주인공은?: 녹음된 통화가 주는 위로] 선입견이 지랄이었다. 어제 정여사 면회를 가니 간호사의 첫마디가 섬망이 있으시고, 횡설수설 기운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대화를 한 시간여 해보니, 생각보다 횡설수설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면회 올 그날 아침에 전화로 정여사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18분 정도를 통화를 하는 와중에 내가 느끼는 것은, 어쩌면 정말 횡설수설이 섞여있을지도 몰라. 그래서 내가 잘 못 알아들을 수도 있어..... 잘 알아들질 못하겠다는 판단되는 대화가 있었다. 그날이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이었으니, 횡설수설도 가능한 시점이었을 게다. 하지만 전 날에 대화가 가능했음에도 간호사의 그 말이 귀에 박혀서 내가 못 알아들은 것이 아니라 정여사가 횡.. 2023.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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