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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보다 더 가벼울 수는 없다: a very simple Thought on heavy Top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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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story 우리 정여사110

고비마다 달랐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정여사와 자녀들의 사별 여정 [고비마다 달랐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정여사와 자녀들의 사별 여정] 입원에서 소천까지 10개월 15일. 입원활 때, 코로나 검사결과 양성 판정. 신장기능이 약화되고 있는 중이었는데 아마도 코로나로 더 불편해졌을 것이라는 판단을 한다. 뇌졸중이 원인이었지만, 그전에도 소변이 시원하지 않았다고 뒤에 생각해 내었다. 12월 말에 입원. 2월에 1차 위급. 정여사도, 자녀들도 "서로의 사별"에 대한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가족과 의사의 인텐시브 케어로 회복. 염증수치. 영양. 8월에 2차 위급 발생. 2월에 딸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아들은 8월에도 보내드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추석은 함께 보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피력했고, 정여사는 내가 준비한 음식을 외면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 삼키셨다. 나의.. 2024. 6. 24.
아직도 남아 있는 정여사용품 [아직도 남아있는 정여사용품] 평소에 준비성을 발휘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정여사에게 필요할 것들은 쟁여 두었다. 아직도 남았다. 각 환자마다 보균한 세균이 다르다.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지만 면역력 약한 옆 환자에겐 질병을 유발할 수도 있으니, 병원에서의 물티류 사용량은 어마어마하다. 설사라도 한번 하면 소모 속도가 끝장을 본다. 물티슈와 화장지 소모 속도가 느려서 아직도 남았다. 열심히 단디 하자. 2024. 6. 22.
정여사와의 마지막 순간을 놓치다: 엄마 미안해!!! [정여사와의 마지막 순간을 놓치다:엄마 미안해!!!] 유학 시절에 종교학을 공부하던 친구가 그랬다. 자기들 종교에서는 누군가 사망하면 3일 정도는 그 혼이 떠나지 않고 있다고 믿고서, 가족 친지 친구 지인들이 부지런히 와서 인사를 한다고. 그 몸 옆에서. 우리도 3일장을 치르는 것을 보면 그런 맥락들이 알게 모르게 이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입관도 사망 후 적어도 24시간 후에 하는 것이 관례이고 보면 숨은 멎어도 그 영혼이 더 머무른다는 뜻이다. 귀가 제일 마지막에 닫힌다고 할 말을 다 하라고도 한다. 우리 정여사 장례를 치르면서 가슴 아픈 게 있다. 하나는, 사망 선고 후에 장례 준비 절차를 할 사람이 본인 뿐이라 급히 서두른다고, 고요히 앉아서 몸을 떠난 정여사의 영혼을 위로하고 이별을 하지 못했다... 2024. 6. 16.
아련한 추억의 기차역명: 기장 좌천 월내 [아련한 추억의 기차역명: 기장 좌천 월내] 좌천은모친 고향을 열차를 이용하라면 알아야 하는 역명이었다.기장은해운대 청사포가 고향이었던 고모가 시집 온 마을이었다. 고모가 둘인데 큰 고모는 대변으로, 막내 고모는 기장으로 시집을 가신 것이었다. 큰 고모댁은 어쩌다 한 번씩 갔고, 작은 고모네는 생각보다 자주 갔었다. 왜 그랬지? 나는 집안의 대소사 즉 결혼 장례 매년 돌아오는  제사에 거의 참석하는 편이긴 해도 고모댁엔 왜 그렇게 자주 온 것일까? 선친 일찍 가시는 바람에 고모가 동생 대신 늘 "내 조카!!! 내 조카!!!" 하면서 각별한 애정을 보이셨던 터라 어린 마음에 그게 좋아서 자주 간 것일까?월내는월내는선친께서 고리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참여하셨던 시절에  계셨던 있었던 곳이다.월내에서 내려서 .. 2024. 6. 5.
우리 정여사의 눈물 포인트 [정여사의 눈물 포인트]    드라마 눈물의 여왕을 보고, 울었냐는 질문에, 울지 않았다는 친구가 있다. 우리 정여사도 드라마를 보면서 한 번도 우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드라마를 많이 보셨지만, 그리고 같이 볼 때조차 한 번도 그녀가 눈물 글썽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가슴속에 응어리진 뭔가가 없는 것일까.  드라마를 보고 울지 않으시니 실생활에서도 그랬을까. 그렇다. 우리 정여사는 평생에 몇 번 꼽을 만큼 우셨다. 친자매가 7명이었으니 그들이 모두 정여사 보다 먼저 삶을 마감했으니 그때는 우셨을 것이나, 직접 목격은 하지 못했다. 소식을 내가 없을 때 받으셨으니 이미 울고 나서 내가 못 본 것이다.   실제로 우는 것을 본 것은 남편사망. 그리고 장례 일정 기간 동안 그리고 화장장에서 들어갈 때 .. 2024. 5. 28.
병풍의 재활용: 선친과 정여사의 기억 [병풍의 재활용: 선친과 정여사의 기억]선친 기일에 48년간 사용해 왔던 병풍. 제사를 위해서는 저 뒤편을 사용했다. 빛바래고 글도 바랬지만 검은색이라 덜 표시가 났고, 밤의 형광등 불빛에서 표시가 많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병풍을 정말 소중히 다루었다. 75년에 돌아가시고 23년에 마지막 제사를 지내면서, 제사의 이동을 고했다. 햇수를 세어 보니 44회가 아니고, 48회나 된다. 서울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제사를 왔던 부모님들의 아들들이 참으로 대견스럽다고 생각하시겠다. 그래서 병풍이 남았는데, 정이 들어서 버리기도 쉽지 않은데, 재활용할 걸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뒤편에 산수화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 내었다.   거실 창에 햇빛 차단 필름이 부쳤지만 낮에는 밝다. 낮에 눈부심을 해결할 수 있어서 TV .. 2024.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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