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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보다 더 가벼울 수는 없다: a very simple Thought on heavy Top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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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story 우리 정여사110

긴 여정을 마쳤다: 선친 기제 아들네로 이관하다 [긴 여정을 마쳤다: 선친 기제를 아들네로 이관하다] 정여사가 주관하던 선친 기제사는 이제 그 긴 막을 내렸다. 1979년에 첫 기일을 시작으로 45년간 45회를 주관하셨다. 마지막인 올해에 정여사는 불참했다. 선친이 있는 곳으로 몸소 떠나셨기에 그러하다. 작년까지 정여사는 그녀가 혼자서 재료를 사고 준비했던 젊었을 때나 기력이 떨어져 몸소 제사 재료를 살 수 없을 때는 나를 포터로, 나중에는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주문만으로, 더 나중에는 네가 알아서 하거라라고 양보했을 때조차도 늘 주관하셨다. 시금치 다듬기와 콩나물 발 자르기는 늘 정여사 담당이었다. 최후의 순간이었던 작년까지도. 시금치 삶는 과정도 늘 감독하셨다. 시금치는 잘 다듬어야 달고 맛나고, 데치기를 잘해야 그 싱싱함이 느껴져서 늘 정여사의 도.. 2023. 12. 3.
디지털 알람시계 겸 라디오 [디지털 알람시계 겸 라디오] 정여사의 집에는 알람시계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벽에 가로 50 세로 80cm 정도 되는 벽시계를 전선으로 연결을 해서 아침 6시면 동네가 떠나갈 듯 굉음을 내도록 알람을 알리는 벽계를 아들은 개조해 주었다. 아파트도 아니었고 길 가 집이라 다른 집에 소음을 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우리에게는 굉음이었다는 기억이 있다. 어쩌면 옆집에도 들렸을까? 손재주가 많은 아들이었다. 그 아들이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사 온 알람시계가 이 디지털 기계이다. 40년도 넘은 이 디지털 라디오는, 라디오로서도 디지털이라 놀라웠다. AM/FM 라디오가 깨끗하게 나왔다. 알람 설정이 가능했다. 또한 밤과 낮에는 디지털의 빛의 세기도 조절할 수 있었다. 정여사에게는 보물같은 기계였다. 라디오로서의 역할은.. 2023. 11. 26.
소통의 습관: 아침 8시에 할 일이 없어졌다 [소통의 습관: 아침 8시에 할 일이 없어졌다] 우리 정여사가 큰 아들의 자식들, 즉 손자를 돌봐준다고 서울로 떠났을 때. 친구분들은 모두 고향에 사셨다. 한 마디로 아는 사람은 아들과 며느리와 손주들 뿐인 곳으로 길을 잡으셨다. 결혼부터 지금까지 대단히 해 준 것도 없는데, 애들이라도 봐줘야 한다면 고향을 떠나셨다. 마음이 짠해서 매일 아침 등굣길이나 출근길에 전화를 드렸다. 그래서 친구가 없어도 매일매일의 일과를 서로 주고받았다. 우리는 전화를 많이 한 사이라 할 수 있다. 그 버릇은 유학을 가서도 계속되었는데, 유학 시절엔 일주일에 한 번 한국 시간으로 금요일 아침에 통화를 했다. 일주일 간의 근황을 들었다. 정여사가 혼자임을 덜 느끼게 하는 조처였다. 물론 일상이 궁금하기도 했다만... 요양병원으.. 2023. 11. 20.
마지막 통화의 동문서답의 주인공은?: 녹음된 통화가 주는 위로 [마지막 통화의 동문서답의 주인공은?: 녹음된 통화가 주는 위로] 선입견이 지랄이었다. 어제 정여사 면회를 가니 간호사의 첫마디가 섬망이 있으시고, 횡설수설 기운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대화를 한 시간여 해보니, 생각보다 횡설수설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면회 올 그날 아침에 전화로 정여사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18분 정도를 통화를 하는 와중에 내가 느끼는 것은, 어쩌면 정말 횡설수설이 섞여있을지도 몰라. 그래서 내가 잘 못 알아들을 수도 있어..... 잘 알아들질 못하겠다는 판단되는 대화가 있었다. 그날이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이었으니, 횡설수설도 가능한 시점이었을 게다. 하지만 전 날에 대화가 가능했음에도 간호사의 그 말이 귀에 박혀서 내가 못 알아들은 것이 아니라 정여사가 횡.. 2023. 11. 20.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힘: 자연사는 고뇌의 결과물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힘: 자연사는 고뇌의 결과물] 생전에 정여사와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선친 기일쯤이나 드라마를 보다가, 정여사 사후에 장례 치를 일, 상조회사 가입하는 일, 화장, 묘지 설정 등등과 더불어 빼놓지 않았던 것이 사전연명의료에 대한 정여사의 의견이었다. 종교가 없이 자신의 심성을 믿으며 살았고 자식들을 키웠던 정여사는 죽음도 자연의 일부로 자연스레 생각하셨다. 모든 장례절차의 형식을 다 아셨지만, 실행할 자식들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늘 강조하셨다. 원칙은 이러한데, 이제 세상은 바뀌어가고 있고, 매사에 너희들이 적절하게 대처하라. 마음이 중요하다. 연명의료에 대한 이야기도 충분히 나누었고, 함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러 가려했으나 이동이 여의치 않아 차일피일하던 차에, 작년에 온병원 .. 2023. 11. 20.
내가 어떻게 여길 왔어?: 하얀 기억의 고마움 [내가 어떻게 여길 왔어? 하얀 기억의 고마움] 중환자실로 내려온 지 몇 시간 번쩍 정신이 든 정여사는 이렇게 질문하셨다. 내가 어쩌다 어떻게 여길 왔지? 정여사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최근 3년 정도의 기간에 있었던 일에 대하여 기억이 희미하다. 또한 필름이 잠깐 끊기면 새로 최근일을 더듬어야 한다는 것도 알아 차린 지 오래다. 초기 치매 증상인 단기 기억 장애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하여, 나는 차분하게 답한다. 원래 엄마는 고햘압으로 약을 드시는데, 갑자기 새벽에 혈압이 거꾸로 너무 많이 떨어져서 내가 모시고 왔지요. 엄마!!! 그래.. 예... 요양병원에서의 기억은 하나도 없고, 집에서 바로 온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신다. 단기기억의 장애로 요양병원에서.. 2023.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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