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 여왕 정여사: 수선거리를 그대 품 안에]
정여사는 두려움이 없었다. 뭔가 고장이 나거나 수선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순식간에 대책을 세우고 순식간에 일처리를 하셨다.
말이 나오면 바로 실행을 하고 있는 분이셨다. 그 점이 나와 가장 다른 측면이었다. 나는 생각을 하고 계획을 세우고 다시 생각을 하고 실행하는 반면, 정여사는 생각과 실행 사이에 시간의 간극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적확했다.
제사를 지낼 때 병풍을 세우는데, 제사 상이 혼자 옮기기 번거로운 큰 상이라 펼치고 정리하는 사이에 몇 번을 모서리로 병풍을 찧었다. 움푹 들어가서 보기가 상그러운데, 새로 구매를 하기엔 아깝고, 그냥 보기엔 난감한 그런 상처들.
정여사는 "조심 좀 하지"라는 야단도 할 법한데 일체 말씀이 없으셨다. 질책이 없었다. 문득 생각해 보니 정여사에게 야단을 맞은 기억이 없다. 야단을 하지 않는 정여사다. 물론 나도 큰 잘못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만...
여하한, 정여사는 바로 제사상에 올릴 배를 사 온 배 상자의 배를 오려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밀가루 풀을 바로 쏘시고 붙여 버리신다.
제사상에 올리는 배로 수선했으니 괜찮을 거야!!!... 끝.
또한, 옷 수선에도 거리낌이 없는 정여사였다. 새 옷이 좀 적으면 더 큰 옷으로 교환도 가능한데, 서울까지 가고 오고 할 이유가 뭐 있나 하면서, 바로 옷에 가위를 대신다. 물론 마음속으로 디자인을 하셨겠지.
보통의 경우엔, 다소 불편한 구석이 있더라도 감수하고 입거나 수선센터로 가야 할 것을, 정여사는 자신이 바로 수리를 했다. 셀프 수선 센터였다.
모자는 필요가 없는데 달려 있다고 모자를 떼 버리 신다. 그리고 모자의 퍼는 필요하다고 떼서 목에 가지런히 붙인다. 기계 재봉틀도 없다. 손바느질로 쓱싹 해치우신다. 표가 나지도 않는다.
그러더니, 이왕 하는 것이니 품도 좀 늘려볼까 하시더니 옆에 품을 붙이서 늘이셨다. 아니 이 옷감은 어디서 왔나? 싶어 점검을 해본다. 할머니들은 길이가 이렇게 길 필요가 없어. 아니 난 그래.
밑단을 잘라서 길이를 줄이고, 그 감으로 품을 넓히신 것. 오 마이 갓. 양재학교 가서 양재와 재단을 배웠으면 성공을 하시지 않았을까? 경제적으로 우리를 더 편하게 키울 수 있지 않았을까? 똑같이 몸은 고되더라도 훨씬 창의적인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정여사는, 이런 작업을 통해 자신의 옷을 혹은 병풍을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으셨다. 대담하고 거침없고 담대한 엄마였다.
그렇게 손바느질을 한 뒤에, 재봉틀로 수선 센터에 가서 다시 박아오는 일도 없었다. 손바느질로 완성. 끝이었다. 하늘나라로 가시고 정여사 방의 유품 중에 옷들을 살펴보니 정여사 손을 거치지 않은 옷이 없다. 모든 것을 자기가 편하게 입을 수 있게 변형하셨던 분!!!
평생 불만이 없으셨던 분. 그냥 자신이 수선하고 고치고 맞추어주고 하면 되니까. 심지어 인간관계에서도 두려움과 거침이 없었다. 자신이 다 정리할 수 있었으니.
그런 정여사가 하늘나라로!!!
모든 옷들이 정겹다. 하나하나 사진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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