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보다 더 가벼울 수는 없다: a very simple Thought on heavy Topics
HERstory 우리 정여사

마지막 통화의 동문서답의 주인공은?: 녹음된 통화가 주는 위로

by 전설s 2023. 11. 20.
반응형

[마지막 통화의 동문서답의 주인공은?: 녹음된 통화가 주는 위로]

 

꽃과 동물을 사랑했던 정여사. 꽃단으로 모셨다.


선입견이 지랄이었다. 어제 정여사 면회를 가니 간호사의 첫마디가 섬망이 있으시고, 횡설수설 기운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대화를 한 시간여 해보니, 생각보다 횡설수설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면회 올 그날 아침에 전화로 정여사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18분 정도를 통화를 하는 와중에 내가 느끼는 것은, 어쩌면  정말 횡설수설이 섞여있을지도 몰라. 그래서 내가 잘 못 알아들을 수도 있어..... 잘 알아들질 못하겠다는 판단되는 대화가 있었다. 
 
그날이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이었으니, 횡설수설도 가능한 시점이었을 게다. 하지만 전 날에 대화가 가능했음에도 간호사의 그 말이 귀에 박혀서 내가 못 알아들은 것이 아니라 정여사가 횡설 수설이었겠거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바로 회사 결근을 하고 병원을 가야 할지 아니면 2시에 도착할 정여사의 아들과 합류하여도 될지를 판가름하기 위해사 대화를 이어가 보니 2시까지는 별 일이 없어 보였다. 실제로 그랬다. 나중에 물어보니 완벽하다고 할 수 없지만, 의식 있는 상태로 대화를 이어갔다고 전해 들었다. 
 
올해엔 정여사가 위급하다고 느낀 그 순간부터 아침통화를 녹음을 해 왔다. 처음엔 다 저장했다가 나중에는 평범한 대화는 삭제하고 정리를 하면서 녹음을 지속했다. 마지막 전날 18분의 녹음을 돌아가시고 나서 서울 식구들이 부산에 오는 그 시간에 계약한 장례식장에 앉아서 고요히 다시 들어보았다. 적막하고 넓은 장례식장의 공간에 혼자 조용히 앉아서.
 
성능 좋은 이어폰으로 가만히 들어보니, 세상에, 정여사는 횡설수설한 것이 아니었다. 그 마지막 통화에서 정여사는 하고 싶은 말을 또박또박 하고 있었다. 말이 어눌한 것을 나는 횡설수설이라 판단하고, 엉뚱하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동문서답을 한 사람은 내일 하늘나라로 갈 정여사가 아니라 지상에서 더 살아갈 나였던 것이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는데 너는 알고 있느냐?
인사하고자 돌아왔다. 전화를 하려니까 안되어서... 그런데 지금 연결이 되었다.
살아있을 때 보러 오라 해라.
내일 죽을지도 몰라.
 
이런 내용을 말하고 있는데 나는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대목이 있었다. 평소에 정여사와 대화하기를, 그냥 가시면 내가 섭섭하고 당황하니 전화를 하고 하늘나라로 가시라고 거듭 말해왔다. 물론 우리는 농담으로 했지만, 진심이었다. 그러면 정여사는, 전화 걸 정도면 죽을까? 아직 살 여력이 있는 것이지. 
 
그랬다. 전화할 정도면...
 
그런데 전화 내용을 들어보면, 죽었다가 다시 돌아왔다고 하시고, 연락을 하려고 애를 썼다는 것이 나온다. 전화이야기가 나오는데, 죽었다 깨어나서 나에게 전화를 하려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못해서 속상해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아침 전화 벨소리에 죽음으로 가다가 깨어났지만 전화를 받을 수 없어서 속상한 것인지가 살짝 애매하다. 
 
하지만, 분명 정여사는 자신의 갈 길이 어디인지, 언제인지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고, 늘 우리가 대화한 것처럼 나에게 알리고 가려고 부단히 노력했다는 것이다. 정신력 의지력 가히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정여사. 그날 아침에 제대로 못 알아듣고 동문서답해서 엄마 죄송합니다. 

연락하고 가시라는 그 말을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해 왔던가. 정여사는 마지막에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실천을 하고 간 셈이다. 그날 오후에 서울 서 온 아들을 만났고, 그다음 날에 내가 왔다는 것까지 인식을 하고 저 영원의 세게로 발길을 재촉하셨다. 아마도 마지막 두 시간 동안 나의 긴 고백을 여운 삼아, 배경으로 먼 길 나섰던 것이다. 엄마에게 가장 안전한 느낌을 준 딸의 목소리를 배경으로. 
 
약속을 지켜주신 엄마 덕에 많이 놀라지 않고, 많이 당황하지 않고 보내드릴 수 있었다. 훌륭한 분.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