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습관: 아침 8시에 할 일이 없어졌다]
우리 정여사가 큰 아들의 자식들, 즉 손자를 돌봐준다고 서울로 떠났을 때. 친구분들은 모두 고향에 사셨다. 한 마디로 아는 사람은 아들과 며느리와 손주들 뿐인 곳으로 길을 잡으셨다. 결혼부터 지금까지 대단히 해 준 것도 없는데, 애들이라도 봐줘야 한다면 고향을 떠나셨다.
마음이 짠해서 매일 아침 등굣길이나 출근길에 전화를 드렸다. 그래서 친구가 없어도 매일매일의 일과를 서로 주고받았다. 우리는 전화를 많이 한 사이라 할 수 있다.
그 버릇은 유학을 가서도 계속되었는데, 유학 시절엔 일주일에 한 번 한국 시간으로 금요일 아침에 통화를 했다. 일주일 간의 근황을 들었다. 정여사가 혼자임을 덜 느끼게 하는 조처였다. 물론 일상이 궁금하기도 했다만...
요양병원으로 가시자 또 매일 통화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친구가 없을 정여사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목적은 두 번째다. 첫 번째는 단기 기억 장애로 아침마다 낯설 병원 환경에 잘 적응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아침마다 문안 인사도 하고, 병원에 있는 이유, 병원 위치 그리고 언제든지 딸에게 전화하면 된다는 안심 메시지가 제일 중요한 목적이었다.
그런데 정여사를 하늘 나라도 보내고 보니, 나의 아침 8시가 허망하다. 전화받을 정여사가 부재중!!!
요양병원으로 모시고 나서는,
할 일이 하나도 없는 듯했고,
하늘나라로 모시고 나서는,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는 듯 했고.
이제 아침 8시가 되니, 정여사의 부재를 느낀다.
아하. 정여사는 전화를 받을 수 없는 곳에 계시는구나. 마음의 전화를 하나 사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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