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떻게 여길 왔어? 하얀 기억의 고마움]
중환자실로 내려온 지 몇 시간 번쩍 정신이 든 정여사는 이렇게 질문하셨다.
내가 어쩌다 어떻게 여길 왔지?
정여사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최근 3년 정도의 기간에 있었던 일에 대하여 기억이 희미하다. 또한 필름이 잠깐 끊기면 새로 최근일을 더듬어야 한다는 것도 알아 차린 지 오래다. 초기 치매 증상인 단기 기억 장애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하여, 나는 차분하게 답한다.
원래 엄마는 고햘압으로 약을 드시는데, 갑자기 새벽에 혈압이 거꾸로 너무 많이 떨어져서 내가 모시고 왔지요. 엄마!!!
그래..
예...
요양병원에서의 기억은 하나도 없고, 집에서 바로 온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신다. 단기기억의 장애로 요양병원에서 사람들을 사귀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오로지 아침 8시에 오는 나의 전화만이 세상과 연결된 안전지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 불편했을 시절을 까맣게 잊으신 정여사.
그 홀로 섰던 요양병원 생활을 잊은 그 하얀 기억이, 블랙 아웃의 결과물이 오히려 나와 정여사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
맞아요. 엄마. 우린 집에서 행복하게 살다가 혈압이 너무 떨어져서 중환자실로 왔고 지금 승압제로 대화를 하고 있는 겁니다.
요양병원에 모셔놓고 불편했던 모든 기억이 산산이 흩어진다. 단기기억장애도 병원으로 이사한 한 큰 이유이긴 했는데, 그게 없었으면 집에 더 머물렀을지도 모르는 것이었는데, 새삼 그 장애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이 되어버린다.
인상사 새옹지마다. 하얀 기억이 병도 주고 약도 준다. 고스란히 받아내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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