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을 사랑하는 정여사: 트롯보다 좋은 딸과의 기억]
정여사의 세계에서 TV는 친구이다. 늘 만나고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고 모든 여행지를 소개하며 세상을 열어주는 친구이다. 현실에서 수다를 나누는 일도 좋아했지만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자 그녀는 TV를 친구 삼았다. 그러다가 별 일이 있으면 나를 불러 세우고 문제점을 논한다. 방속국에 전화해라 저런 점은 애들이 보는 시간에 방영을 하면 안 된다 해라. 뉴스를 보다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물어보신다.
그런 정여사가 그것도 지겨울 때면, 음악을 켜신다. 음악만 들을 때도 있고 들으면서 바느질을 하실 때도 있다. 바느질을 하실 때는 음악이 틀어져 있기도 하고, TV가 틀어져 있기도 한다. 조용히 따라 부르고 있는 날도 많다. 흥이 많으신 분이라 그렇다.
정여사 핸폰에 트롯을 담았다. 집에서 즐겨 듣던 그 음악들로 저장을 했다. 스스로 열어서 듣기는 어렵겠고 간호사들이 해 주기도 애매하다. 그러나 면회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틀어 놓고 온다면 저녁 식사 때까지 두 어 시간을 들을 수 있다. 저절로 꺼지거나 전화를 해서 끄면 된다.
면회를 마치고, 음악을 틀어 주려니 정여사가 매우 기쁜 얼굴이 아니다. 음악 듣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정여사가?
왜?
아니 너랑 대화를.....(우물 쭈물)
처음에는 면회 온 딸과 대화를 해야 하는데 음악을 들려준다니 뜬금없어서 그러시나 보다라고 판단했다. 면회를 왔으면 눈을 마주하고 대화를 하는 것이 더 합당한 것이니 정여사의 그런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오늘은
정확하게 밝혀 보았다.
면회 끝나고 틀어놓고 갈게요 엄마!!!!
아니, 그러지 말아라.
왜? 늘 듣던 음악인데 엄마. TV를 보시는 게 더 좋은가?
아니..... 너와 대화한 것들을 다시 생각하고 너 생각하고 이 시간을 생각하고... 노래 듣기도 좋지만 지금은 이게 더 좋아.
코로나 때문에 면회실에서 10분 만 겨우 얼굴만 보다가 늘 대화가 끊겨 귀가를 한 우리들. 그러나 7월 말부터 완화 조치로 자기 병실에서 면회가 허용이 되기 시작하자 면회시간을 30분 정도로 늘여도 서로 용인해 준다. 때로는 한 시간도 가능한 날도 있다. 눈치 보면서 시간을 어긴다.
30분 내지 한 시간을 손을 꼭 잡고 대화를 한다. 면회가 끝나도 우리 정여사는 그 대화와 접촉의 여운이 너무 좋은 것이었다. 손을 잡고 대화하는 그 시간도 소중하고, 딸이 떠난 그 지점부터 내일이면 사라질 그 기억이 아직 살아있는 이 여운을 음악 듣기로 잃지 않고 싶었던 것이다.
사랑스러운 정여사!!!!!
단기억장애가 맞고, 치매 초기가 맞다고 치더라도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간직하고자 하는 전두엽의 저 선명한 판단과 선택은 얼마나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진지한가.
우리는 각자에게 이렇게 소중한 사람이다. 나도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그녀와의 대화를 재생산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은 그녀가 행복을 유지했나? 웃겨 드렸나? 이런 일상의 중단이 언제가 될 지 절대로 모를 일이지만 그렇게 우리의 일상과 추억은 만들어져 가고 있다.
너희가 트로트를 아느냐? 정여사의 트로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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