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와 동행하지만 아직 정여사 다움을 유지하다]
섬세함도 잃지 않았다. 과거의 어느 시점에 갇히지도 않았다. 미래를 위한 계획도 없다. 그런데 단기기억은 일절 없다. 그런데도 전정엽은 재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하루 중에 문득 특별한 사유도 없이 필름이 끊기는 모양이다. 자다가 일어나서 그런 것도 아니고, 혼자서 멍하니 혹은 생각이라는 것을 하다가 기억의 길을, 생각의 길을 잃는 순간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모양이다.
만양게 정여사가 걸을 다닐 정도이면, 이쯤에서 길을 잃거나, 넘어져사 다치거나 하는 일이 발생이 될 것이고, 그녀는 이제 팔찌나 목걸이에 연락처를 새기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병원에 계시고 와병 생활 중이시니 그런 위험은 없다.
필름이 끊기면 어김없이 전화가 온다. 어떻게 하여야 할 지에 대하여 판단을 하고 대응력을 아직 발휘하는 정여사이다. 매우 정여사다운 침착함으로 사태를 해결하는 듯하다.
1. 요양보호사나 간호조무사에게 전화를 걸어 달라고 한다. 물론 나에게.
2. 그리고는 묻는다. 어디 있는지 위치를 모르겠다는 말을 하지 않고 다만 엄마가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를 묻는다.
3. 안다고 하면, 데리러 올 것인가를 묻는다. 자신은 차비도 없고, 집 위치도 명확하지 않으니 혼자 갈 수 없다는 설명을 한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더더욱)
4. 그래서 병원이라고 알리고 입원한 배경을 설명하면, 이해를 한다.
필름이 끊겨도 차분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나 있자고 하면서 보호자에게 전화를 해야겠다고 전략을 짜는 뇌활동은 살아 있다. 치매의 여러 가지 발병의 와중에도 그나마 멍하게 있지 않고 자신의 할 일을 찾아내고 실행해 주어서 감사한 마음이다. 그리고 대화도 충분히 정상적이다. 다만, 그 대화는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기억하지 않는다. 아니 기억할 필요가 없어졌다. 필요가 없어서가 이유가 되어, 이제는 필요가 있어도 기억하지 않는 조건이 되어 버렸다.
그나마 현재에 대화를 할 수 있고, 그 대화가 나름 정상적이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도 정여사와 통화를 하고 면회를 한다..
입원 두 달 3번의 전화: 내가 왜 여기에? 엄마 여깄다 데리러 오너라
기억을 잃은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노트북/첫 키스만 50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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