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가 너무 짧아!!!!: 고치고 싶은 정여사]
좋은 기억들 많이 쌓으며 살아야겠다.
좋은 기술 하나쯤은 있어도 좋겠다.
좋은 취미도 하나 쯤 익혀 두면 좋겠다.
잘하는 전문 능력도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퇴직 후에도 남은 날들이 더 행복할 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배우려는 자세라도 있으면 남은 날들이 더 알찰지도 모르겠다. 꼭 알차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정여사는 분명히 단기 기억 장애가 있음에도 기억하는 것이 있다. 관심이 있는 것. 혹은 강렬함을 준 것. 물론 오래 기억할 수 없지만, 점심 메뉴를 물어보면 깡그리 기억에 없음에도 여전히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정여사를 만나러 병원에 가는 날은 정여사가 관심을 가질 만한 옷을 고른다. 이왕이면 그날은 정여사가 좋아하거나 즐길만한 눈요기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굳이 그날을 위해 입는 옷이 있다. 오늘은 감색 원피스를 골랐는데, 이 것이 길이 제법 짧다. 그래도 고운 디자인에 고운 빛깔이라 입고 나선다.
감색 원피스에 빨간 단화는 역시나 정여사의 관심을 끈다. 식사량이 줄어서 눈이 휑해서 마음은 아픈데, 눈은 초롱초롱하다. 그녀 앞에서 빙글빙글 패션쇼를 한다. 옆모습 앞모습 찬찬히 감상하고서는, 결국 앞치마단을 스스로 올려서 점검하시는 정여사.
치마가 짧다면서 치마단에 얼마나 여유가 있는 지 직접 살핀다. 집에 계실 때라면 벌써 바느질함에 손을 대고 말았을 것이다. 칼로 실을 풀고 가벼운 시침질을 해 주셨을 것이다. 가벼운 시침으로는 곤란한 질감이라고 하니, 그러면 바로 바느질방에 가서 박으면 된다고 제안하신다.
물론 나는 짧은 치마를 그대로 입고 다닐 것이지만, 정여사의 무료한 일상에 한 줄기 빛을 선사한 이 기분은 어쩔 것인가. 이미 원피스는 자신의 임무를 200%나 실현을 했다.
하루 지나서 전화로 원피스건을 물어보니 자기가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것은 기억을 하신다. 치마단의 여분도 기억하고, 짧은 것을 커버하기 위한 나의 잔재주도 기억하고 계신다. 치매가 오건 말건, 자신의 취미가 정확하게 하나쯤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기억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여사는 집에 있을 때, 최후의 순간까지 바늘을 놓지 않았다. 양말도 꿰매 주시고.... 그래서 88세까지 치매를 미룰 수 있었을게다. 끝까지 미룰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질병이 깊어가도 아직 취미는 남아있는 우리 정여사. 어제의 기억을 대화할 수는 없어도 현재의 판단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우리 정여사. 짧은 원피스의 밑단 여분을 바로 확인하는 취미에의 열정. 나름 바느질인으로서의 전문성. 자신이 좋아하던 일에 대해 아직 기억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듯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있었다는 것이 더 감동적인 일이기도 하다. 그것이 직업이 아니고 취미여서 더 행복한 오늘이다.
바느질하는 정여사가 감동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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