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에 살다: Carpe Diem]
과거가 휘황 찬란한 사람이 있다. 교육도 많이 받았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책도 많이 읽고 부모는 부자여서 풍족했으며 친구도 더없이... 현재는 불만족스럽지만 그 아름답던 과거를 연연해하는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서 현재를 불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에게 우리는 말해왔다.
So what? carpe diem. 그래서 뭐? 현재를 살자. 과거에 살지 말고.
미래를 위하여 현재의 행복을 양보할 수 있는 사람들을 보아왔다. 과거가 아픔을 주었을지라도, 과거는 지났으니 미래를 위해 살 테다. 정신적으로 행복하고 물질적으로 풍족할 멋진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다 주어도 좋다. 건강을 좀 잃는 것도 수용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에게 우리는 말해왔다.
So what? Carpe Diem. 그래서 미래가 어쩐다고? 현재를 살자.
과거에 갇히지 말고 미래에 갇히지 말고, 현재를 더 소중히 하자. 과거는 지났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우리는 현재가 가장 소중하다. 만질 수 있는 시간은 현재뿐이다. 과거를 누려 본 적은 있으나 미래를 만져보진 못했다. 현재만이 내가 호흡할 수 있는 과거이자 미래이다.
그러나 모든 아름다운 이유와 권유에도 불구하고, 현재에 주어진 것에 만족할 줄 알고, 그 안에서 삶의 즐거움도 누리고, 아주 작게만 최소한으로 미래를 위하여 양보하는 그런 밸런스를 누리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물론 어렵다고 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선택하지 않아도 와버린 그 순간에 대해 이야기를 좀 더 하고자 할 뿐이다. 현재만 살 수 밖에 없는 그 순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 정여사는 단기 기억 장애가 있는 초기 치매 환자이다. 단기 기억 장애가 발생한 것이다. 한 시간 전의 일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런 단기기억이 없으니, 기억 장애가 발생한 그날, 특정할 수 없는 그날 이후의 기억은 장기 기억으로도 저장되지 않는다. 단기 기억이 있어야 장기 기억으로 넘길지 아니면 쓰레기통으로 버릴 기억인지 분류를 할 것인데, 단기 기억이 없으니, 치매 발병 이후의 사건들에 대한 장기 기억이 없다.
그래서 정여사는 현재 이 순간에만 산다. 먼 과거의 장기 기억은 소환할 수 있지만 점점 흐려진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현재에만 존재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 간다. 젊어서 그렇게 들었던 현재를 즐기라는 그 화두가 오늘에야 저절로 실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슬픈 실현인가. 미래를 계획할 나이도 아니고, 계획한다 한들 그 야심 찬 계획은 단기 기억으로도 장기 기억으로도 전환되지 않는 실천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오로지 현재에만 드디어 살게 된 것이다.
노모를 모시고 살면, 치매에 든 부모를 살피다 보면 이런저런 삶의 혜안이 빨리 열린다. 삶의 여정에서 중요한 것을 선택하는 시기와 방법과 실천에 관하여 남보다 한 발 빨리 먼저 실천의 장에 들어서게 된다. 자식에게 이런 기회를 주기 위해서 치매를 앓는 것은 아니지만, 치매가 이제 노령인구의 대부분을 점령할 미래에 우리가 살아가게 되니, 굳이 친 부모가 아니라도 이런 교훈은 준다. 정신을 바짝 차리자는 것이다.
이제 미래준비가 아니라 현재를 더 사랑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할 나이가 되었다는 뜻이다. 어쩌면 치매와 동행하여 현재를 살게 될 미래조차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환갑을 맞을 나이가 되면, 인생을 좀 자시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 날들이다.
과거는 갔고, 미래는 올 지 안 올지도 모르고. 오늘 무엇을 할까. Carpe Di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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