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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습기를 싫어했다. 집 뒤로 산이 있고, 잠마철엔 때론 무섭게 산에서부터 흙탕물이 내려오는 것도 사나웠지만 집 안 가득한 습기가 불편했다. 그렇다고 그 한 여름에 불을 넣어 집을 건조하게 할 것도 아니었다. 옛날 장마가 있던 시절의 주택살기는 그런 불편함이 있었다.
세월이 흐르니 해마다 여름이면 열흘 혹은 2주일씩 연례행사를 하던 장마가, 바뀌었다. 비가 안 오는 장마라니. 어색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기후는 그런 변화를 만들었다. 이제 며칠 우렁차게 오고 장마가 자나 갔다. 옛날의 그 불편했던 습기에 대한 추억이 사라져 갔다
기후변화로 인해 장마의 특징도 변해갔지만, 나도 변했다는 것을 알았다. 장마가 습기를 조장하니 장마도 싫었고 비도 싫었다. 그런데 기후 변화뿐만 아니라 [아파트 살이]가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아파트 2 중문이 습기를 어느 정도 막아주니, 장마도 싫지가 않아 졌다. 아니 나는 비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았다. 우산이 있어도 비를 맞을 정도의 열정은 아니었으나 빗소리도 즐길 줄 알고, 비가 오는 고요함과 사나움까지 바라보기를 좋아하는 것을 알았다.
습기.
장마.
주택 살이.
아파트 살이.
인간은 환경의 지대한 영향 아래서 진정한 자신의 캐릭터를 오해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일 지도 모른다. 환경의 변화에 순종하는지도 모르면서, 어쩌면 동일 인물의 다른 페르소나를 연출하면서 살고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어떤 페르소나의 주인공으로 집을 나설까? 장마가 시작되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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