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의 문상의 의미]
문상은 왜 갈까. 고인을 잘 몰라도 고인이 길러 낸 자식들이 나의 친구이고 지인이어서 간다. 친구나 지인의 삶의 궤적은 이미 아는 것이고, 설사 모른다 하더라도 지금부터 더 알아가면 되는 것이다. 문상에서는 잘 모르는 사람 즉 고인의 삶의 궤적을 듣게 된다. 삶의 궤적을 논할 형편이 안되면 생생했던 사람이 삶에서 죽음으로 어떻게 나아갔는가의 과정을 간접 경험하게 된다. 노환으로 지병으로 그리고 급사로 그렇게 우리는 삶을 마감하는 것을 간접 체험하고 돌아온다. 문상의 의미는 무엇일까. 친구나 지인을 위로함. 고인을 만나서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고인이 우리에게 남기는 메시지가 아닌가 한다.
아버지는 6남 2녀의, 어머니의 5남 2녀의 막내이셨다. 어릴 때부터 많은 장례식을 부모님을 따라다녔다. 그때는 죽음도 몰랐고 슬픔도 몰랐다. 중1 때 선친의 장례식을 치르면서도 슬픔을 몰랐고 죽음도 몰랐다. 등교했다가 돌아오니 아버지는 이미 임종을 하셨고 장례는 사촌들과 어른들이 일사천리로 했던 기억만 있다. 할머니 장례를 필두로 큰 아버지들 큰어머니들 고모들. 친가뿐만 아니라 외가까지 무수한 장례에 참가하다 보니 무덤덤해지기도 했다. 장례는 명절 때 보던 사람을 이제 더 이상 못 보는 일이었다. 문상은 모친을 따라..
어른이 되고 나서야, 문상이 좀 무겁게 왔다. 슬픈 적은 별로 없었다. 삶이 늘 무거운 것이라는 것만 기억하고 왔다.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재인식하고 왔다. 죽음은 그 사람의 삶의 궤적을 묻지 않았다. 때가 되면 무자비하게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세월이 더 지나고서는 죽음이 무자비하게 오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죽음은 무자비가 아니라 때로는 아니 대부분 자비로 오는 것이었다. 죽음은 사람을 노쇠한 몸이나 앓고 고통스러운 몸으로부터 정신을 해방시키는 자비로움으로 오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자기의 순간을 안다고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런 기회를 가질까. 삶은 죽음으로 가는 과정. 죽음은 삶의 모든 과정을 안내하고 있다. 죽음이 안내하는 것을 조용히 음미하면 삶을 어떻게 꾸릴 지 스스로 알게 된다고 했다. 삶도 죽음도 두려워할 일은 아니다. 그게 그거니까. 용기를 가지고 희망을 가지고 삶을 꾸려 나가면 된다.
문상은 남은이들을 위로하러 가는 것이지만, 고인으로부터 삶과 죽음의 연장선에 대한 이야기와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선물 받고 오는 행위이다. 문상을 가서 더 나은 삶을 계획할 수 있다면,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하는 계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면, 고인은 문상객에게 더없이 큰 선물을 지구를 떠나면서 주게 되는 것이다. 문상은 그 선물을 받으러 가는 것이 아닐까. 그게 평범한 사람들의 문상의 의미가 아닐까.
호상: 가슴이 웅장했던 곡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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