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마다 만난 소가 무서웠어]
초등학교 시절엔 공부가 뭔지 몰랐다. 아니 조금 알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학교를 다니는 그 학기 중에만 알았다고 해야 한다. 수업을 받고 시험 준비를 하고 성적을 받는 그 일련의 기간에는 열심히 학생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였을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도 여름과 겨울 방학이면 늘 친가에 가서 여름과 겨울을 보내었다. 왜 우리 부모님들은 방학 때마다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안 계신 친가에 보내셨을까? 제일 큰 백부 댁에서 우리는 여름과 겨울을 났다.
방학에는 어촌 시골마을에서 놀기에 바빴는데, 방학 숙제라는 책 1권과 그 안에서 행해야 하는 메뚜기 잡기, 만들기 등등을 조카랑 만들었던 기억이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그 조카랑 노느라 방학이 다 지났다.
어촌이지만 얕은 산 사이로 계곡물도 있어서 계곡에서도 놀았고, 겁이 많아서 바다에 들어가 수영을 못 배운 것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바다가 코 앞인데 어린아이가 왜 개헤엄이라도 배우지 않았을까. 조카가 창으로 물고기를 잡을 때에도 전설은 얕은 물가에서 돌만 디비고 있었다. 작은 물고기들 도망가는 것을 보느라..
백부 댁은 바다에서 제일 먼 곳에 위치했다. 그곳에서 바닷가 쪽으로 밭을 두 계단 지나면 백부의 아들, 즉 사촌집에 있었다. 이 집에서 사촌의 아들인 조카와 대부분의 시간을 놀았다. 그 집에서 또 밭 7개 정도를 지나면 사촌집이 있었고, 철길을 지나면 바닷가 쪽에 또 다른 사촌집과 다른 백부 집이 있었다. 여름 장마에 태풍이 올 때면 바닷가 쪽 백부 집은 수난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만큼 바다와 가까웠다.
하루 종일 놀다가 백부 집으로 저녁 먹을 때쯤 다시 돌아갔는데 가끔은 저녁도 먹고 자러 가는 날도 있었다. 이 순간이 제일 무서운 순간이 된다. 지금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보다 몸집이 큰 동물을 보면 움츠러드는데, 초등학교 시절은 오죽했겠는가. 큰 집 마당을 들어서려면, 아주 커다란 소가 문이 없었던 마당 입구에 등을 보이며 옆으로 누워 울타리처럼 누워 있는 것이었다.
겨울에는 자기 집에 있어서 어려움이 없는데, 여름이면 별채가 연결된 그 소 마구간이 더워서 여름밤은 마당에서 잘 수 있도록 백부님이 배려하신 것이었다. 여물 먹기를 마친 소가 느긋하게 쉬고 있는데, 어린 시절에 그런 사정을 알겠나.
소가 가로 막은 마당 입구. 갑자기 얼음땡이 되어 몸이 얼어붙는다. 덩치가 나보다 5배가 넘겠고, 마당 입구로 얼굴이 보이면 표정이라도 살피고, 내가 해코지할 마음이 없다는 것도 보이고, 소의 표정도 살피겠는데 소는 등을 보이고 누워 있었다. 설사 얼굴이 보인다 해도 보름이 아닌 이상 얼굴 보기는 어차피 힘들고.
그때는 소가 이렇게 순한 동물인지 몰랐다. 나보다 덩치가 커서 무서웠고, 시골에는 방학에만 있었던지라 소와 친할 일이 없었다. 초등학생 어린이가 도시에서 왔는데 소몰이를 시켰을까. 다만 놀기만 하는 역할이었기에 도시에서 온 초등학생은 무섭기만 할 뿐이었던 것이다.
백부를 소리쳐 부르면, 소는 꿈틀 해서 놀라고, 마루에서 걱정 말고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백부는 야속하기만 했는데, 그래도 백부가 쳐다보고 있으니 용기를 겨우 내어 소 옆을 지나갔던 기억. 백부는 귀엽기도 하지만 소를 무서워하는 아이가 다소 황당하지 않았을까.
오늘 누가 소 이야기를 꺼내니 문득 그 여름방학의 소가 가장 근접하게 전설이 접했던 사이였던 터라 제일 먼저
떠오른다. 밤마다 두려움에 떨며 전설은 백부를 불러 놓고 마당 입장을 했더랬다.
[플러스]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을 시골에서 보내고 오면, 집을 깡그리 잊는다. 3-4학년 정도까지는 방학 숙제도 하지 않았던 터라, 책이며, 가방이며, 개학을 하면 물건 찾아 삼만리를 했다. 5학년이 되고 나서야, 자기 학교 물건이 어디 있는지를 챙길 줄 알았다. 세월이 가니 부모가 닦달을 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물건을 챙겼고 공부를 저절로 해졌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명절에만 시골을 갔다. 중학교 때부터는 방학에 공부를 좀 했던 듯.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또 안 가게 되었을까. 오늘 정여사에게 한번 여쭈어 봐야겠다. 초등시절엔 왜 보냈고,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왜 보내지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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