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만의 뜻밖의 연락: 전세 원금 드리고 싶어요]
동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누군가가 정여사의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는데, 줘도 되는가를 물었다. 정여사의 연락처는 없고, 딸의 연락처만 있어서 물어본다고 한다. 개인 정보라 동의를 구하려고 전화를 했단다. 정여사는 전화가 있는가? 그 번호를 알려 줘도 되는가?
자신이 누구라 하던가요?
돈을 갚아야 한다고 합니다.
무슨 돈을? 이름이 무엇인데요?
000 씨의 딸이라 하고 000 씨가 전세금을 갚고 싶다고 연락처를 달라고 합니다.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난다. 그 사연도 뇌를 휙 지나간다.
== 24년 전 ==
방을 뺐는데, 주인이 전세금이 없다고 한다. 새 전세를 올 사람을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고 누구처럼 다른 사람이 세를 얻으러 올 때까지 짐을 둘 수도 없다. 짐을 그대로 두어야 전세금을 받기에 유리하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다만 전세금이 적었다. 그래서 마음이 가벼웠을까? 쿨하게( 아니 멍청하게 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만) "다음에 돈이 생기면 주세요" 하면서 정여사의 연락처를 주고 미련 없이 떠났다.
== 23년 전 ==
1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으니, 정여사가 자신의 친구들과 전세금을 받아보겠다는 의지를 알려왔다. 해 보라고 했다. 전세보증금 반환 청구 소송을 진행을 해서 승소를 하였으나 여전히 주인은 돈이 없다. 주인이 그 몇 년간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모든 것에 채권자가 붙어 있었다. 언제 우리 차례가 올 지.
주인은 "당신 딸 전세금은 꼭 갚겠다" 하면서 백만 원을 변제하였다고 했다. 그 백만 원은 정여사가 수고한 친구들에게도 감사의 표시를 하고 마무리를 하셨다.
== 3년 전 ==
이사를 준비하면서 집을 정리하다가 소송 관련 서류를 발견하였다. 유학 후 귀국하여 옛집을 가보았으나 그들이 그곳에 살진 않았다. 그들을 찾는 것보다 내 삶이 더 소중하고 바빠서 잊었다. 그런데 서류를 발견하고 일자를 보니 시효가 지나있다. 승소를 해도 10년 시효가 말소되면 소멸시효 연장 소송을 해 두어야 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래서 의미 없는 서류라 판단하여 처분했다.
=== 다시 몇 개월 전==
동사무소의 전화는 이런 일련의 기억을 소환한다. 전화번호를 주고받아서 대화를 시작한다. 당사자와는 대화를 못했다. 주인의 딸도 그 당시에 알던 사이라 그녀가 연계를 했다. 나는 굳이 주인의 전화번호를 알고 싶지 않았고, 그녀도 그러했다. 딸이 중개를 하면서 마무리되었다. 법률사무소의 사무장의 서류 정리로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다.
24년이 지난 이 시점에 엄마는 왜 전세금을 돌려줄 생각을 하셨을까?
언니 전세금은 돌려줘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고, 그간 돈을 조금 모았기에 원금이라도 드리려 합니다.
훌륭하시구나. 엄마도 너도. 엄마가 주는 데로 받겠다 말씀드려 다오.
예, 아니면 엄마랑 직접 대화를 하셔야 할 듯해요.
일단 연락 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해다오. 또한 엄마가 주시는 데로 받는다고...
(원금은 줄 것이고, 이자 부분은 그녀의 양심에 맡겼다)
== 그 이후에 알게 된 사실 ==
전세보증권 반환 청구소송을 해서 승소 기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권리 말소 되기 전의 기간 (10년 말소기간이라면 10년의 기간 동안)에 독촉한 사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소멸시효가 완성이 되기 전에 소멸시효 연장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그.
리.
고.
비록
시효가 완성이 되었더라도 갚아야 할 금액을 조금이라도 변제를 했다면 권리는 다시 살아나 시작된다. (이 사실을 나는 뒤늦게 배웠다.) 나의 경우는, 적은 원금이라도 받으면 좋으니 받을 뿐이지만, 주인의 입장에서는 그것으로 인하여 다시 권리가 살아나면 오늘까지의 복리 이자까지 엄청난 금액을 갚아야 하게 되는 것. 그래서 법률사무소의 사무장이 개입이 되었던 것이었다.
아예 안 갚아도 되었을 소멸된 의무였으나 그녀는 원금은 갚아 마음의 빚을 해결했다. 법률적 마무리를 함으로써 더 이상의 변제가 발생하지 않게 하였다.
나의 경우는, 다 늦게 24년이 지나서 소멸완성된 소송의 원금을 받으니 서로에게 윈윈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정한 승리자는 평생을 돈놀이를 한 주인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이는 그녀에게 내가 주는 속담이다. 나에게 적용된 속담은 모르는 게 약이었을 뿐. 그러나 평생을 통하여 법적 거래를 어떻게 하는가는 그 집에 잠시 머물 때 그녀에게서 배웠다. 원금보다 훨씬 더 많은 이자는 그 배움과 깨우침에 대한 감사라고 정리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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