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 노트/버킷리스트/유서]
자연사하면 참 좋겠지만 느닷없이 맞는 죽음도 있다. 자연스레 아프다가 조용히 지구를 떠날 수 있다면 제일 좋겠다. 아니 떠나는 그 날을 알면 이것저것 정리도 하고 참 편리하겠는데.
생로병사는 철저하게 내 의사와 상관없이 이루어진다. 철이 들어보니 태어나 살고 있었고,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늙어가고 있었다. 더 열심히 살려고 했을 뿐인데 스트레스는 소리없이 질병을 잉태하고 낳았다. 질병과 동행하는 가운데 어느 날 이 세상과 이별을 하게 될 터이다. 생로병사의 어느 한 과정에도 그들은 우리에게 묻지 않는다.
생해도 되겠습니까?
로해도 되겠습니까?
병을 득해도 되겠습니까?
사가 코앞인데도 모르고 계시군요. 모셔가도 되겠습니까?
생로병사의 특징이 그렇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말이다. 선택의 여지가 주어질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아닌 것이다. 운명의 그 수레바퀴 어딘가를 우리는 그냥 돌다가 지치면 멈추면 되는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운명의 수레바퀴가 언제쯤 멈추어질지 알 수 있게 되는 경우가 있다. 행일까. 불행일까.
멀지 않은 기간에 죽음이 예견되어 있는 경우가 그 경우이다.
친구가 엔딩노트를 아냐고 한다.
생각난 김에 유사한 것들을 다 가져와 보자. 엔딩 노트/버킷리스트/유서.
엔딩노트는
죽음의 날짜를 받아놓고, 죽음이 임박함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죽기 전에 한 일을 적으면서 남을 가족들에게 글을 남기는 작업이다. 담길 내용은 죽음을 마감하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의 실천기. 죽음에 다가서는 본인과 본인을 둘러싼 하루하루의 마음의 돌봄과 관찰. 그리고 사후에 필요한 장례 절차나 유산 등에 대한 바람 그리고 남은 가족에게 글로 남기는 조언/충고/사랑 등등을 포함하게 된다. 일기와 엔딩노트는 유사하다. 일기는 생을 위하여, 엔딩노트는 죽음을 향하여.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다를 뿐이다. 다만 계획이 아니라 실천을 행한 것을 위주로.
버킷리스트는 뭘까.
엔딩노트는 죽음을 예감할 수 있는 사람이 기록하는 죽기 전에 하고 싶었고 실제로 한 일에 대한 기록을 담는다면, 버킷리스트는 인간이라서 불멸할 수 없으니 언젠가는 죽을 것을 알지만 언제 일지는 가늠할 수 없는 사람들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소망을 적은 것"이라고 정의해 두어야 하겠다. 그리하여 버킷리스트는 무거워지다가 실천을 하게 되면 또 가벼워지고... 아직 유동성은 있는 상태다.
엔딩노트가 죽음에 가까워질 때마다 차곡차곡 빼곡하게 무게가 무거워지는 반면에 버킷리스트에 담긴 소망은 하나씩 제거되면서 점점 가벼워져야 한다. 하나의 사건을 놓고 실천을 하면 엔딩노트는 두꺼워지고 버킷리스트는 가벼워지게 된다. 바람직하게는.
그러나 현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특별히 각성(?)할 기회가 있지 않은 이상 [버킷리스트의 소망 꺼내먹기]와 [엔딩노트의 실천 기록]이 동시에 일어날 확률이 높다. 우리는 각성할 기회가 많지 않고 죽음에 이르러서는 급히 이 둘을 소화하여야 한다. 급히라도 소화할 기회를 가진 사람은 복이 많다. 대부분의 경우엔 둘 다를 행해보지도 못하고 지구를 떠나야 한다.
질병으로 인하여 자신의 삶이 마감할 즈음을 아는 것이 복일까. 그러면 엔딩노트도 적고, 버킷리스트 길이도 줄이면서 남은 삶을 마감할 수 있지 않겠나. 아니면 자연스럽게 살다가 엔딩노트고 버킷리스트도 모른 채 준비 없이 자연스럽게 생을 마감하는 게 좋을까.
답은 정해지지 않는다.
생로병사는 우리의 관할이 아니므로.
엔딩노트는 오늘 시작할 수 없지만, 버킷리스트는 오늘부터 적기 시작할 수도 있겠다. 엔딩노트는 삶에 대하여 혜안이 열릴 때 그때부터 써 볼 계획을 잡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일기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계속이다. 엔딩노트라고 명명을 할 때가 되면 컴퓨터가 아니라 노트에 볼펜으로 적을까 싶다.
유서는 어떨까?
유서는 언제든지 쓸 수 있다. 유서에 담길 내용도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엔딩 노트처럼 1권으로 거창하게 적을 수는 없을지라도 [가족들에게 남기는 글][유산상속에 관하여]등을 분리하여 몇 페이지에 걸쳐서 제법 길게 적어도 상관이 없다. 다만 법적인 문제가 대두되니 그런 부분은 명확히 하라고 조언을 한다.
젊은 시절부터 유서를 적는 것도 나쁘지 않다. 별로 적을 내용이 없을 것이니 진행이 어렵다. 그런 사람은 아이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 시작하면 된다. 이것도 빠르다. 자녀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이나 결혼을 시킬 즈음부터 적어보는 것이 권장된다. 젊어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시작해도 된다만.
전문가들은 해마다 고쳐 쓰라고 한다. 자녀들이나 배우자 그리고 지인들에게 하고 남기고 싶거나 못다 한 말들이 해마다 변동하지 않겠는가. 유서에 적었는데 올해에 그것이 해소되었다면, 제거해야 하고.... 수정하거나 보강할 일이 자꾸 생기지 않는가.
[나는 새해가 되면 유서를 쓴다]는 책도 있다. 유서를 쓸 마음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도 목차라도 한번 훑어볼 이유가 있다. 훑어보다가 합당한 이유가 보이면 당신도 [유서]라는 것을 써야 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평소에 가족에게 할 말을 다 한 사람은 굳이 유서로 글을 남기기 않아도 이심전심이 될 것이다. 유산상속이라는 것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무난하게 법적으로 정리가 된다.
그러나 상속할 재산이 얼마 없더라도 가족 구성이 특이하거나 특정 자녀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어야 한다거나 하는 등의 사유가 있을 경우에는 교통정리를 해 두는 것이 모두에게 행복한 일이 된다. 자녀들이 나의 사후에도 별 탈 없이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행복하게 해 주는 기본이 된다.
올해는 지나가고 있고 새해부터 [나도 새해가 되면 유서를 써 볼까]한다.
[플러스]
1. 살아가면서 장애우처럼 지속적으로 재정적 필요가 꾸준히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엔 똑같은 자녀라도 재산상속이 불균등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옳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또한 부모를 위해 헌신한 장남에게 당연히 더 많이 배분될 줄 알았던 할머니 사후에 모든 것은 법대로 돌아간다. 형제자매는 그 상속의 불균등을 용납하나 며느리와 사위는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권리는 없지만 자신의 배우자에게 영향은 끼칠 수 있는 존재들이 있는 것이다. 인정으로 정리되는 경우는 드물다. 법적으로 해도 되겠다 싶은 경우가 아니면 당신이 유서에 써 둔 한 마디는 얼마나 중요할 것인가.
2. 재혼 남녀의 경우에도 이런 정리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보았다. 재혼 전에 미리 문서로 정리해두는 것이 살기도 편하고 나중에 자녀들도 불필요한 감정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게 한다. 자녀를 사랑한다면 미리미리 정리해서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이 권장된다. 훌륭한 부모의 마지막 사랑이다.
3. 현행 법대로 되지 않아야 할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반드시 관심을 기져 보아야 한다.
4. 내년부터 써 보려면, 유서에 담겨져야 할 내용을 조사를 해보아야겠다.
5. [엔딩노트][버킷리스트]라는 동명의 영화가 있다. 관심있는 사람은 보기 바란다.
6. 아래 링크된 영화에서 {안녕, 헤이즐]에서 헤이즐은 아름다운 유언글을 남긴다. [죽기 전에 듣고 싶은 말]과 [버킷리스트]에서는, 아니 3편 모두 다 엔딩노트를 쓰는 것이 아니라 "엔딩 라이프"를 실천하는 것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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