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재료가 되는 흔적: 책/사진/음악/동행/다큐]
책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전설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것을 즐겼다. 그러나 친구는 책을 사서 읽었다. 한 번 읽으면 다시 읽히지 않는데 굳이 살 이유가 있는가. 성경이나 불경도 살까 말까 한데 말이다. 역사서마저도 굳이 사야 할 이유는 없었다. 역사의 해석이 새로워지기도 하고, 같은 책이라도 판을 거듭할수록 현대적 감각의 디자인과 종이의 성질을 가지고 등장하는 데 말이다.
친구의 생각은 달랐다. 설사 역사의 해석이 달라지고 책의 디자인과 종이의 질이 달라진다고 해도, 그 책을 읽었을 당시의 느낌이 생생이 살아나려면 책을 구입해야 하고 자신의 책장에 두어서 오고 가며 책 제목이라도 정겹게 보다가 어느 날 문득 꺼내 들고, 자신이 줄을 친 곳이라던가 여백에 메모해 둔 것들을 보는 재미가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주제가 늘 뇌리 속에 남아있게 되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똑똑한 넘.
전설은 소유를 싫어했다. 책은 물론이고 다른 것도 가능하면 소유하지 않는걸로. 심지어 여행을 가도 사진을 찍지 않았었다. 그런데 글을 적으려고 하니 뇌 속의 기억 말고는 손에 쥔 것이 없다. 이런 난감한 일이. 사진은 기록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다음에 회상하는 즐거움을 누리려면 그 재료로서 아주 소량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사람이 포함되지 않은 사진은 몇 장씩 찍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동행이 있는 여행이라면 사람이 있는 사진도 한 두장은 있는 것이 남은 삶에 더 큰 즐거움을 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는 요즘이다. 예전에 과거를 돌아보지 않았기에 필요 없었던 것들. 하루하루가 바빠서 볼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제쳤던 것들이 여유가 있으니 이제 생각의 재료로 필요함을 느낀다.
여행지의 아름다운 사진들은 인터넷에 널렸다. 다만 내가 어떤 이유로 그 장면을 왜 남겨야 했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서사가 없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글만 적을 때는 사진이 필요 없었는데, 요새는 소통하고자 하면 글보다 사진이 더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세상의 트렌드가 변화된 것이다.
그 옛날에 그 친구는 사진도 잘 활용하고 있을까. 그럴 것이리라. 내 손길이 묻어 있는 보던 책, 내가 소중하다고 판단한 순간의 사진 한 컷. 여행지에서 들었던 음악. 그 것들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시간대에 살고 있다.
기록.
죽기 전에 정리할 것들이지만 현재의 즐거움을 위하여 기록과 흔적남기기는 활기차고 풍요로운 삶을 위한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겠다.
귀찮더라도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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