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랑해수욕장 옆 외가]
예전엔 해운대에 와서 시외버스로 임랑까지 왔던 기억이 있다. 더 옛날엔 동해남부선을 타고 월내나 좌천에서 내려서 사람들은 걸었다. 임랑으로.
오늘은 동해남부선에서 지하철 동해선으로 변신한 열차를 타고 왔다. 좌천역에서 내려서 30분 걸으려 하는데 37번 버스가 왔다. 한 구역. 임랑 삼거리에 내렸다.
임랑 삼거리의 외가 쪽 방향에 마을회관 들어섰다. 그 옛날에도 있었는데 내가 몰랐을지도 모르다만.
임랑은 5가지 성씨 씨족마을이었다고 적혀 있다. 그중의 하나가 동래 정 씨였고, 우리 정여사는 여기서 태어났던 것이다. 동래 정 씨 시조묘는 부산 하마정에 정묘사에 있다.
삼거리 마을 회관 맞은편에 약국 말고 약방이 있었다. 지금은 주차장일세.
삼거리에서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골목길을 조금 돌아 들어가면 있던 마당 넓은 집이었는데...
큰 외숙모 사후에 잠시 방치되었다가 매매가 되고 말았다.
외사촌에게 주소를 물어볼 수 있지만 번거로워 가늠만 한다.
마당이 제법 넓었는데, 큰 외숙모는 마당에도 부엌에도 티끌 하나 없이 말끔하게 관리하셨다. 성질이 특별하셔서 넉넉한 외삼촌이 늘 져 주었던 기억. 안방에는 벽장을 뚫어서 이불이 아니라 누런 호박이 빼곡히 있었다.
집 위치에서 더듬더듬 기억을 더듬어 임랑 바닷가로 향한다. 어렸던 그 시절의 기억으로도 바다는 외가에서 가까웠다. 수영복을 입고 뛰어나가도 될 만큼
우리 정여사는 어린 시절 이 앞바다에서 외삼촌들과 얼마나 즐겁고 신난 삶을 살았을 것인가.
평생 바다가 무섭지 않았고 겁내지 않으셨던 정여사. 정식 수영법은 아니지만 바다에 늘 떠 있을 수 있었고 평화로워 보였다.
옛날 그때보다 모래밭이 줄었다. 차도를 낸다고 반쯤 없애버려서 그런 듯하다. 그런데 모레는 그때보다 깨끗하다.
돌도 많고 뭔가 어설픈 백사장이었는데, 오늘 보니 모래를 외부에서 사 와서 붇고 있다. 그랬군!!!
임랑삼거리만 살아있다.
그 골목길만 살아있다.
그리고
백사장은 반으로 줄었고
모래는 고와졌고
119 구조 전망대가 설치되었다.
그 긴 세월 동안 이 만큼 변했으면, 적게 변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그 흔적이라도 아직 찾을 수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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