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향일암 240603]
여수 향일암은 양양 낙산사 그리고 거제 보리암과 더불어 해수관음상을 가진 3대 사찰중의 하나이다. 두 군데를 보았으니 오늘은 여수 향일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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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플랜을 짜지 않는 여행을 계획? 했다. 예전이면 일정표를 짰지만, 이젠 짜지 않기로 하고, 현지에서 결정하기로 해 본다. 무계획여행의 연습이다. 목적지만 딱 한 군데 정해놓고 거기만 다녀온다. 오늘은 여수 향일암이다.
시외버스표를 예매하지 않았으니 여유가 넘쳐난다. 버스가, 지하철이 늦게 와도 아무 조바심이 없다. 월요일 아침에 버스가 만석도 아니겠고 배차 시간만 맞으면 오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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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15분 고속버스가 있다. 30분 남았으니 커피 1잔에 딱이다. 터미널인데 커피값이 2천 원. 싸다. 집에서 향일암 일주문까지 5시간 15분 소요인데, 버스 기다리는 시간 등 합하면 아마도 7시간쯤 소요되지 않을까. 포털의 길 안내는 "기다리는 시간"을 넣어주지 않는다. 7시 40분에 시외버스터미널로 출발.
자가용 없이 하는 여행의 어려움은 환승할 이동 버스들 간의 배차 시간을 절묘하게 맞추는 일이다. 쉽지 않다. 기다리는 시간이 많다. 이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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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수 터미널에서 향일암까지의 버스와의 조우가 관건이다. 여차하면 거기서 1박을 해야 할 지도.
절묘하게 예정에 없던 시각에 버스가 왔다. 111번이 아니라 111-1번이다. 시골길을 시간을 달리니 종점에 이른다. 향일암이다. 막차가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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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단부터 마음을 닦으며 정진하면 관음전에 이르면 부처님과 같은 마음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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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돌부처상을 지나면 저 멀리 현판이 보인다. 다리에 힘 있을 때 와 봐야 할 곳인가 보다. 앞의 젊은 아줌마는 벌써 지쳤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엔 법구경의 교훈을 온몸으로 재현중인 돌부처가 수줍게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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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부처가 띄엄띄엄 생각할 시간을 주며 연극 중이다. 초등학생 같은 귀여움이 있다.
남의 허물만 보지 말고 내 허물을 살펴라. 옳고 그름을 살펴 행하라.
남의 하는 말에 휘둘리지 말고 굳건히 나아가라.
그리고
나쁜 말, 남 비방 말고 자신을 살펴라. 궤 말이 다 내게로 돌아온다 인과응보로.
뭐 그런 교훈들이다. 계단이 힘드니 할 수없이 멈추고, 보고, 할 수 없이 뜻을 생각하게 된다.
적절한 강제 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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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오르는 것이 힘든 이유는, 사실 버스에서 내려서 계단까지 오는 길이 이미 가팔라 헉헉거리며 도착해서이다.
그게 불쌍해서인지 해탈문에 이르면 곧 해탈할 듯한 기분이 든다. 저 계단 올라서 보이는 큰 바위틈 사이를 가로지른다. 해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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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다. 해탈에 이르는 길은 좁지만 너무 쉽다. 땡볕을 바위가 다 감싸 안아서 좁은 바위틈은 서늘함을 주면서 release 되는 느낌이 좋다. 겨울엔 아마 따스하겠지.
좁은 바위를 이용하여 해탈문을 만들었지만 건장한 남자가 어깨를 펴고 걸어가고도 남을 충분한 공간이니, 마음만 먹으면 해탈로 이를 수 있다고 유혹하는 듯한 특이한 돌문, 해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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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도 아담하다. 월요일이라 나름 부처님도 조용한 일상을 즐기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많은 중생을 구제하고 싶겠지만 좀 한가한 날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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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오른쪽에 범종이 놓여있고 그 처마 끝에 달린 풍경에서 소리가 난다. 바람 따라 살랑살랑 자유롭다.
안녕!!!
풍경아!!!
부처님의 자비가 온 누리에.
날아다는 생명 포함 모든 생명체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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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관음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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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돌산 어딘가에 구비 구비 절 모습을 갖추긴 했으나 공간 부족인가? 부처님 불상이 그지없이 소박하다. 당연히 관음보살의 상도 소박하다 자그마하다.
소박하다고 하여 부처께서, 관세음보살께서 자기 일을 게을리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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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전 바로 옆으로 들어서면 드디어 해수관음상이 드러나는데, 관음전 안의 보살보다 더 크지 않다. 삼광사의 불상이나 해동 용궁사의 해수관음상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것없어 보이는 크기로 내려다보신다.
아담한 모습으로 반기신다.
얘야?
뭘 원하느냐?
아... 예...
해탈을 원하옵니다만....
너 만?
아니... 저라도 우선 쩜....
바다는 멀고 광활하기만 한데, 해탈 말고 뭘 요청할까?
원래의 뜻대로 중생을 구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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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관음상 바로 아래에 원효대사가 앉아서 수도했다는 큰 바위가 있다. 신라 원효대사로부터 시작된 사찰이었다 하니, 참으로 오랜 세월이다. 원효대사님은 참 여러 곳을 다니셨어!!! 새삼 원효대사의 무애행을 곱씹어 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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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관음상 오른쪽으로 연리지 나무가 있는데, 때로 사랑나무라 부른단다. 서로 다른 나무가 뿌리부터 줄기까지 엉키어 자라면서 마치 한 나무 같은....
연리지같이 얽힌 인연이 몇몇 있으면 더 나은 삶이었을까? 사랑나무라 하니, 답은 예스인 듯도 한데, 불교 가르침은 또 그렇지 않은 듯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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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 내려오면 천수관음전. 정말 손이 천 개인가 세다가 말았다. 뒤가 안 보여!!!
해수관음보살과
천수관음보살이
합동으로 인간을 살피는 향일암이다.
복이 두 배로 듬뿍 내릴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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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때부터 조성되었으니 그 역사가 얼마인가?
오래된 고찰에는 그 세월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 이끼 바위도 그렇다. 세월이 켜켜이 쌓인 육중함이 밀려온다.
두 보살에 의해 경건해진 마음이, 역사의 무게에 다시 정화된다. 내 앞에 스쳐 지나간 그 많은 한반도의 백성들이여!!! 다들 극락정토에 계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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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각의 옆모습.
벽면이 텅 빈 채로 있는 전각은 정말 드물다. 그 정갈함이 너무 좋아서 한참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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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올라오던 길의 돌부처가 집에 간다고 내려가니 등을 보인다. 가지 말고 수도를 더 하라는 것인가.
이미 해탈문을 자나 온 사람임에도, 이리 등을 보이시는 건가?
묻지도 않았지만 지레,
집에 가서 정진하겠습니다
라고 일단...
이렇게 여수 향일암의 방문을 마친다..
.
.
.
그럼 해탈문을 한번 통과하는 것으로 여행을 마무리 하자. 동영상을 꼭 눌러서 느껴보자. 음악을 없는 게 안타깝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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