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여왕이 되는 나의 조건: 드라마 영화 보면서 우는 포인트 3]
웃음 특히 박장대소는 정신 건강에 매우 좋다. 심지어 육체의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박자대소는 아니라도 미소만 짓는 것도 도움이 된다. 희한하게 우는 것, 눈물 또한 카타르시스를 불러 내는데, 사람마도 웃음 포인트가 다르 듯이 우는 포인트도 다르다. 유머 감각이 다르고, 우는 감수성이 다르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 정여사는 생전에 드라마 보면서 우는 적이 없었다. 어쩌다 같이 보다가 눈물 글썽일 때 쯤 그녀를 쳐다보면 말똥말똥하다. 어째서 울지 않는가 여쭈어 보면, 답은 한결같다. 드라마잖아. 현실이 아니고. 그런 정여사와 평생 살았지만 그녀가 운 것은 몇 번 뿐이다. 사람마다 우는 포인트가 다르다는 이야기이다.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는 주인공 특히 남주인공이 가장 많이 운다. 여주인공은 자기 잘난 맛에 살아서 울 일도 적다. 나중에 몇 번 눈물방울 있지만 대체로 남주가 운다. 드라마 주인공이나 조연들이 우는 포인트와 시청하는 내가 우는 포인트도 다르다. 다른 사람과도 다르고, 주인공과 조연들과는 다른 나의 울음 포인트를 생각해 보았다.
죽을병에 걸리거나 죽음에 이르거나 생로병사에 관한 사건에는 울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 남들이 다 우는 사건에 울지 않으면 언제?
첫째 포인트, 공적 희생을 감행하는 인간을 마주할 때이다. 나 자신을 위하여, 내 가족을 위하여 살신성인의 길을 갈 때는 감동적이다. 그 감동에는 눈물 글썽일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그러나 공적인 가치를 위하야 희생하는 장면에서는 어김없이 울컥한다. 왜? 자신에게 무슨 이익이 있다고 공적 이익이나 가치를 위해서 자신의 불리함을 감수해야 하는가. 울컥한다.
둘째 포인트, 인간의 한계를 시험당하는 순간이다. 인간이라서, 불완전한 인간이라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온갖 우연과 필연의 심연을 볼 때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우리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 모든 상황을 알 수 있지만, 드라마에서는 자신이 파악하는 한에서 우연과 필연의 곡예 속에서 속수무책. 그래서 일어난 일을 당하는 것. 감내하는 것. 그것이 짠해서 운다.
셋째 포인트, 엇갈린 사랑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절절한데 제대로 전달을 못하거나, 전달을 하더라도 애절하기만 하고 연결될 수 없는 그런 사랑. 박경리의 토지에서 이용과 월선처럼 사랑처럼 엇갈리다가 풀리다가 알다가 모르다가 기나 긴 인내의 여정 속에 이루어지는 사랑. 그나마 이루어지면 다행이지만 이루어지지 않고 엇갈리기만 한 사랑을 보는 것도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사랑하면 그냥 사랑하면 될 일이지 오해할 일은 왜 생기며, 왜 오해를 하며... 사랑하는지도 모르고 헤매는 연인들은 더없이 안타까운 눈물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눈물의 여왕은 남주가 많이 울어서가 아니라 시청자가 눈물의 여왕이 되게 하는 드라마가 아닐까. 우리 정여사처럼 울음 포인트가 없는 사람에게는 택도 없는 드라마일 수는 있겠다. 다만 "눈물의 여왕"은 사랑을 다루는 것만이 아니다. 인간의 정체성을 다루는 드라마라는 이유가 본방송 정주행을 이끌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다음에 다루어 보겠다.
나의 울음 포인트는 이 3가지 정도인데, 눈물의 여왕은 적절히 울음을 유도하는 작용을 하였다. 약간의 카다르시스가 있었다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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