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보다 더 가벼울 수는 없다: a very simple Thought on heavy Topics
SERENDIPITY/MEDITATION & books

[말하기 버턴]이 주는 불편함: 산책/간식/가자/만져줘/응/아니야/집사야

by 전설s 2023. 7. 4.
반응형

[말하기 버턴]이 주는 불편함: 산책/간식/가자/만져줘/응/아니야/집사야]

똑똑해 보인다 (사진은 Pixabay).

침팬지들의 지능을 연구하는 동영상을 본 적이 많다. 언어 기능 연구에서는 급기야 단어를 10개쯤 만들어서 단어 맞추기에서는 독보적인 실력이 나왔다. 사물 이름 맞추기부터 시작해서 감정 언어에도 접근이 가능했던 기억이지만, 그들이 문장으로 선택하게 하는 연구 동영상은 아직 보지 못했다. 연구가 없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나의 상식을 업그레이드하지 않아서이다. 오늘의 문제의식은 반려동물용 [말하기 버턴]이다. 고양이 동영상도 몇 개 보았지만 주로 Dog가 그 사용자들이다. 

 

 

침팬지뿐만 아니라 개도 상당한 지능을 가졌다는 것은 키워 본 사람들이면 다 아는 일이다. 키우지 않아도 동영상이나 프로그램을 통하여 인식할 수 있다. 아마도 [반려동물용 말하기 버턴]을 개발한 사람도 침팬지 언어기능 연구 동영상을 보았나 보다. 그리고 그것을 반려동물에게 심플하게 응용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한 모양이다. 

 

 

유튜브를 보다가 [말하기 버턴]으로 소통을 하고 있는 강아지를 본다. 의사를 표시하는 버턴을 하나씩 구매 가능한 모양이다. 6개 9개 정도의 버턴을 보았다. 아마도 더 있을 지도 모른다. 산책/간식/응/아니요/집사야/가자 등등. 의사를 표시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강력하게 주장도 한다.  예를 들면, 신경질 적으로 산책 가자 버턴을 누르는 것이다. 

 

 

침팬지 연구에서는 지금쯤 문장도 선택하는 연구를 하는 지도 모른다. 그런 업그레이드가 있을 것처럼 어쩌면 반려동물용 버턴도 훨씬 진화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뭔가 신나는 느낌과 더불어 복잡한 심정이 된다. 아니 반려 동물과 적확하게 소통하면 좋은 것이지 왜 나는 이런 복잡한 감정이 드는 것일까. 컴퓨터와도 대화하고 사는 마당에...

 

반려동물들은 그들만의 능력으로 버턴의 색 위치 냄새 등으로 구별한다. 심지어 의미도 구별하겠다는 것이 말하기 버턴의 목적이다.

 

사람과의 사이에서도 눈빛만 보아도 공감이 되는 관계가 있고, 아무리 말을 해도 같은 한글을 써도 단어의 용도나 그 단어가 주는 느낌이 달라서 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얼마나 답답한가? 동물을 사랑하면서도 때로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더 궁금한 사람도 있을 것이니 점점 이런 소통방식은 발전할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소중한 발명품인가.

 

 

이렇게 좋고 편리한 소통 방식에 복잡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단지 그 말의 구성이 "반말"이라는 것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이  거슬렸다. 반려동물이 인간의 하위 지위를 가질 이유는 없다. 동등한 지위를 주는 것에도 반대하지만 양보를 해서 동등한 지위를 가지는 것까지 수용하겠다 하더라도, 인간에게 반말로 접근하는 것에는 불만이 폭증한다. 

 

 

자식에게도 반말을 허용하는 부모가 있다. 자식이 아니라도 특수한 관계가 되면 반말을 허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도 마음은 불편하지만, 이해를 한다. 그런데 [말하기 버턴]의 반말을 이해할 만큼 내가 마음이 넓고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어린 자식이라 생각하면 될 것을 나는 왜 이렇게 속이 좁은가. 

 

 

내 속에는 인간이 동물이기는 하지만, 인간종으로서 대우를 해야 한다는 의식이 숨어 있나 보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존엄성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그런 숨은 의식. 그런데 반려동물이 인간에게 하는 반말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한없이 착잡해진다. 인간 말종도 많고, 반려동물이 더 반려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은 데도 말이다.  어쩌면 재미있어라고 반말로 만들었을지도 모르는데 왜 나는 착잡한가.

 

 

자식도 반려 동물도 기본적으로 어른인 인간이 돌봐주는 존재이다. 그러니 존경심을 보이게 말하기 버턴이 제작이 되었으면 좋겠다. "응"이 아니라 예, "아니"가 아니라 아니오. "만져 줘"가 아니라 "만져주세요". 아니면 차라리 단어로만 만들던가. 소통이라는 관점에서 아주 삼빡한 버턴이 복잡한 내면을 표출한다. 나의 소망은 그러하다. 말하기 버턴에도 존칭을 쓰자. 나는 왜 이렇게 속이 좁은가? 이도 고찰할 숙제로 둔다. 아니면 동사로 하지 말고 단어만으로 버턴을 제작해 주었으면 좋겠다. 존칭이나 존중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중립적인 단어로. 

 

 

나는 왜 이렇게 [말하기 버턴]의 반말에 속좁음을 드러내고 마는가. 연구할 숙제로 남겨둔다.  반려동물을 키우지도 않으면서 또한 동물들이 나에게 반말로 말을 거는 것도 아닌데, 참으로 이상한 아침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