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준비에 필요한 것: 우산과 착한 거짓말 둘셋 정도]
우리 정여사는 어디서 이런 얘기를 들은 것일까? 정여사와 대화를 하다 보면 그토록 완벽한 지혜가 담긴 서술적 이야기가 있다. 교육을 많이 받은 것도 아니고 아주 그 삶이 화려했던 것도 아니고, 파란만장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독서량이 방대한 것도 아닌데..... 문득 대화를 주고받다가 정신이 번적 드는 지혜가 든 이야기에 탄복을 한다.
같은 그룹의 사람들의 화합을 늘 모색했던, 생전 남에게 해 될 일을 만들지 않았던 정여사가 또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준다. 어느 흐린 아침에 문안 전화를 드렸다가. 날이 흐려서 우산을 가져가야 하나 안하나를 고민 중이라 하니 바로 거드신다. 가방이 무거운 것을 싫어하는 나라서 뭐라도 안 들고 다니려고 한다. 또한 문안 인사에서 특별히 할 이야기는 이런 얘기가 제격이라 툭 튀어나왔는데, 정여사 왈:
옛말에 그런 말이 있다. 흐린 날에는, 언제 비가 올 지도 모르니 우산과 착한 거짓말 두 개나 세 개 정도는 챙겨야 된단다.
흐린 날에는 비가 올 것이라 에상을 하라는 뜻이겠다. 착한 거짓말인란 어떤 것일까. 그 용도는 무엇일까. 준비했다고 꼭 사용할 이유는 없다. 비가 오지 않는데, 우산을 펼쳐 들 필요가 없고, 거짓말이 필요하지 않은데 굳이 준비했다고 사용할 필요는 없다. 착한 거짓말이란 요즘 말로는 스몰 토크(small talk) 시작 전에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오늘 넥타이 빛깔 좋네요.
원피스 멋집니다.
헤어 컬이 멋지게 나왔네요.
실제로 그래서 칭찬할 수 있으면 더 좋고, 살짝 아니더라도 말해서 기분은 좋고 큰 일 날 일이 없는 것은 발화해도 되지 않을까. 좀 더 깊고 심각한 착한 거짓말도 있을 것이다. " 더 잘될거야" "차차 나아 지지 않을까" 확신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하여 살짝 희망을 넣긴 하는데, 실제로 희망은 느껴지지 않을 때도 사용할 수 있다. 요양병원에 계신 정여사에게 "여름이 너무 더우니 노인들은 에어컨 시원하게 나와서 몸이 쾌적한 곳에서 여름을 나는 게 좋아요" 하면서 병원살이에 더 잘 적응하게 하는 것. 이런 것도 그 착한 거짓말에 속할까. 틀린 말은 아닌데 다 맞는 것도 아닌 것 같은 그런 말. "치매 때문에 병원에 계신 게 좋아요"라는 것보다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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