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생명력 두려운 자연]
밤에 이 집 앞을 지나갔을 때, 가게는 운영 중이었다. 사람들은 불판 위에 고기를 굽고 이었다. 다른 길의 출근길을 이용하다가 이 집 앞으로 출근길을 잡아가고 있는데 잡초들의 행렬이 눈에 들어온다. 잡초들은 이름이 잡초라서, 부르기가 좀 어색하긴 하지만 그 생명력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아주 조그만 균열만 있다면, 잎순 하나 나갈 구멍만 허락된다면 아스팔트 위에서도 시멘트 바닥 위에서도 그 생명을 이어간다. 인간의 문명이 멸망을 할지언정 잡초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자연은 결단코 멸망의 길을 걷지 않는다.
질기고 강한 생명력의 잡초이지만 인간의 손길 앞에서는 조용히 물러난다. 봄이면 어김없이 올라오는 이 잡초를, 보통의 가게 주인이라면 뽑아서 없앤다. 그런데 이 집은 잡초를 그냥 두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주인일까?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잡초를 관상용으로 둘 만큼의 다른 차원의 사람일까?를 생각하면서 며칠을 보내었다.
그 어느 날 밤의 기억으로 이 가게는 영업을 하고 있었기에,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사진을 찍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지나다 보니,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하고 있다. 아뿔싸. 주인이 특이한 이유로, 특별한 성품으로 이 잡초를 목적을 가지고 방치?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챈다. 역시 그랬구나. 이렇게 관상용으로 잡초를 둘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가 상상을 과하게 한 것이었다는 결론.
시멘트 아래에도 아스팔트 아래에서도 건물의 틈새에서도 인간의 손길이 조금만 느슨해지면, 잡초는 자연은 그 생명력으로 승부를 건다. 마치 인간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듯이 보이지만 자연은 결단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단지 수용하는 척할 뿐이다. 인간은, 아무리 고고해도 자신이 이 거대한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거부할 것인가. 전체인 자연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무서움의 대상이다. 거대하면 금방 깨달을 수 있다. 허리케인 지진 쓰나미 해일 계절풍 등은 거대하다. 그래서 자연의 존재의 무거움이 바로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런 거대함에 노출되지 않더라도, 아니 그런 거대함보다 나는 이 가게 앞에서 어김없이 봄에 삐져나오는 이 잡초에게서 자연의 위대함과 무서움과 두려움을 더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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