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가시나무의 변신; 변이가 아니라 단풍처럼]
홍가시나무를 공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공원으로 조성되기 전의 사용자가 이 땅에 나쁜 화학 물질을 묻었다는 등의 소문이 무성했던 것을 기억하였기에, 이 붉음은 분명 화학 물질에 의한 변이 mutation의 결과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래서 그 공원 길을 걷던 아침마다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가운데 관찰을 하며 봄을 보냈었다. 사철나무의 변이. 연두색으로 태어나야 할 잎이 변이로 붉어진 것이리라는 이 의심.
사철나무가 아니라 홍가시나무가 그 이름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홍가시나무는 이렇게 붉은빛으로 그 새 순을 피운다는 것을 알았다. 나무의 종이 다르다는 것도 몰랐던 무식과 무관심이 창피했다. 그 해 봄 관찰에 의하면, 이 붉은 잎들은 여름을 지나면서 작년에 피었던 그 선배 잎처럼 녹색이 되었다.
올해도 홍가시나무는 빛을 받아 붉은 빛이 더 반짝인다. 예쁜 색과 빛깔을 자랑하면서 싱싱하게 지나는 객들을 맞는다. 반가운 마음에 자세히 보다가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 오 마이 갓. 줄기마저 붉은빛을 띠고 나오는 것이구나. 그러다가 전체가 녹색으로 이행하는 것이었구나. 오늘 아침에는 잎과 함께 그 줄기의 붉은빛에도 감동한다.
홍가시나무는 붉은 색을 만들어 내는 유전자와 푸른색을 만들어 내는 유전자를 동시에 가진다. 붉은색 유전자가 나중에 녹색의 유전자로 스위치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유전자에는 그 발현을 조절하는 영역이 존재하는 데, 아마도 이 빛깔 변화의 유전자는 "온도"에 반응을 할 확률이 높다. 참 놀라운 변동의 순간이 아니던가. 유전자 수준에서의 조절이 일어나는 것인데, 홍가시나무를 몰랐을 때에는 사철나무가 화학물질에 의한 유전자 변이에 의해 색이 변화했다고 스스로 오해를 했던 것이다. 어설픈 지식의 산물이다. 그러나 상상은 자유였으니... 그 해 봄의 착각이 와닿는 산책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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