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과의 오랜 동행의 흔적: 주 단위 약 통]
정여사가 만 88세인데, 고혈압 약은 60대부터 복용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에, 엄마가 다리에 힘이 없구나. 입도 말을 좀 안 듣는구나. 그래서 바로 병원에 갔더니 뇌졸중이 온 것이었다. 응급실로 갔으면 휴유증이 아예 없었을까? 심각해 보였으면 바로 응급실을 갔을 터인데 그 때는 살짝 그런 느낌이라 외래로 진료를 보았다. 4시간을 넘겼을 지도 몰랐다. 고혈압이 있었고 뇌졸중 흔적이 있었다. 후유증으로 왼쪽 다리에 감각이 떨어졌다. 나머지는 모두 정상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질병과 동행을 시작하였다. 또한 약과도 악수를 하였다.
처음에는 60대였으니 약 복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혼자서 병원도 다니셨고 약도 복용하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85세 쯤부터 한번씩 아침 약을 빼 먹은 흔적이 나타났다. 약을 잘못 복용하거나 날짜나 요일을 혼돈하는 일이 없었던 정여사는, 85세쯤부터 두어 달에 한번 정도 아침약 복용을 잊는 듯했다. 약을 타면 날짜를 기록하는데, 약이 남는 것이었다. 다행이 두 번을 과복용한 적은 거의 없었다. 25년을 아침을 한 번도 거르지 않으셨고, 식후엔 약을 먹는 습관을 충실히 익힌 그녀였기에 그 정도면 훌륭한 성과이기는 했다만...
85세 쯤 그 해에 주단위 약 통을 샀다. 그러면 날짜와 요일은 아침 TV방송으로 알 수 있으니, 그 요일에 맞추어 약을 먹었는지 먹지 않았는지 확인이 되는 것이니, 약 통을 사서 약을 보관하게 하였다. 효과적이었다. 매일 열고 닫았으니 월화수목금토일 글씨가 지워졌다. 시력도 나빠졌을 것이라 판단하고 진하게 요일을 써서 부친다. 오전 오후 구분에도 사용되겠다 싶어서. 그런 지가 어언 3년 인가.
손 때 묻은 약통을 두고 정여사는 요양병원으로 이사를 했다. 병원에서는 간호사들이 일일이 약 복용 시간을 결정하니 본인이 신경 쓸 일이 없다. 사실 집에 있다가 병원으로 가면 건망증이나 치매 그리고 단기 기억장애는 심화된다. 본인 스스로 할 일이 하나도 없어지기 때문게 급격하게 뇌의 쇠락이 온다. 어절 수 없이 입원을 하지만, 피할 수 없는 단계이다. 그리하여 남겨 진 약 통은 정여사의 방을 지킨다. 내가 활용을 해야겠다. 영양제라도 넣어서.
입원 두 달 3번의 전화: 내가 왜 여기에? 엄마 여깄다 데리러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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