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여, 굿바이!!!: 해 묵은 구두 정리]
정여사가 집을 비우니 아무래도 사용하시던 방부터 정리를 한다. 정리를 해야 제대로 유지할 수 있다. 물건의 자리를 찾아주고 쓸고 닦고. 그러다 보니 신발장까지 진출을 하게 된다. 허디 디스크 파열 이후로 운동화만 신었다. 걷기에 집중하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아무래도 굽 높은 것을 신고 다니다가 삐끗하게 되면 겨우 간추려 놓은 척추 뼈 라인이 다시 망가지는 데다가 알다시피 정상 가동이 쉬운 것은 아닌 것을 아니까, 스스로 구두를 멀리하고 운동화만 사귀었다. 운동화 친구가 많이 늘었다. 몇 년간 구두들이 내 손길과 관심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이제 알아차린다. 마음먹고 구두 정리에 임한다. 신발장 정리하고 해야 하는 건가.
보기에는 정말 멀쩡한 구두들이었다. 예전의 기억으로 얼마간이라도 신지 않았던 구두는 밑창이 삭아서 하루 신고 나가면 망가져 온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 출근 시에 하나씩 신어 보았다. 하루 신어보지 않고도 집안에서 벌써 하자가 보이는 신들은 하이힐들이다. 다른 겨울 부츠보다도 하이힐을 더 오래 신지 않았다. 바닥이 부서진다. 구두 수선장의 추천은 가죽은 아까우나 밑창교체보다는 새로 사서 신는 것을 추천한다.
앞으로 하이힐을 신을 것 같지는 않아서 이 신들은 버려진다. 그 간의 사랑을 생각해서 사진으로 남긴다. 나는 뾰족구두가 좋았다. 또각또각 소리도 좋았다. 4cm 혹은 7cm의 굽 높이. 4센티 굽만으로도 벌써 세상은 나의 것인 듯한 느낌을 주었다. 살짝 올라섰을 뿐인데도 하이힐은 그런 기분을 주었다. 7cm 굽은 더 황홀했는데, 걸을 때 조심해야 했다. 힐을 신으면 척추 라인이 정돈되는 느낌을 주었다. 실상은 그렇지 아니하다는 것을 알지만, 일단 그런 느낌을 주었는데, 그 뻣뻣한 느낌도 좋았다.
더불어 7cm가 넘는 롱부츠는 이제는 위험하겠다 싶어서 밑창 상태를 살피지도 않고, 두 켤레를 바로 재활용으로 분류해 놓아 주었다. 또한 통굽 부츠도 안녕을 고했다. 통으로 지면과 5-6cm를 분리시키는 신발. 수선해서 다시 신을 만큼의 사랑은 아니다. 추울 때는 지상에서 제일 높은 통굽 부츠가 참 좋긴 한데... 아쉬움은 있으나 결별한다.
이 부츠는 단화형이라 낮아서 허리 고장이후에도 간간이 신어서 처분할 수 없다. 뒤창은 수선이 필요하지만, 불사용으로 인한 피해는 없는 소중한 구두다. 비슷한 모양의 부드러운 단화형 부츠가 있었는데, 어는 해 가나자와에 출장 갔을 때, 쌓인 눈 속을 헤집고 다니다가 다 망가졌다. 매우 편한 신이었는데, 그 이후에 만난 귀한 신이다. 걷기도 보기도 너무 좋은.
하이힐이나 굽이 있는 신들과 결별을 하다보니 모조라 다 버리게 생겼다. 다행히 4cm 정도의 굽높이가 있는 앵클부츠가 긴 세월의 나의 무관심에서 살아남았다. 밑창을 고무로 덧대니 새 신발이 되었다. 아무리 단화를 사랑해도, 낮은 굽을 사랑 해도 가끔은 굽이 있는 신들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편리함도 있다. 생각보다 편하다. 걷기에도 나쁘지 않다.
버린 신들은 전체적으로 가죽 구두들인데, 밑창은 처참하였으나 윗부분은 다를 너무 멀쩡했다. 만약에 밑창 외의 부분이 멀쩡하지 않았다면, 이런 그리움으로 사진이나 남겼을까. 바로 쓰레기통으로 옮겨졌을 것이다.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구두들. 단화형에, 걷기도 편하고 발도 편한 앵클부츠는 가죽 상태가 최고(?)이다. 그래서 거금을 들여서 수선을 결정을 했다. 이번 주 내로 찾아오게 된다. 플랫형 앵클부츠 2개와 4cm 앵클부츠이면 겨울을 나겠다. 행복한 정리이다.
앵클부츠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이 외의 다른 2 켤레가 남았다. 하나는 어제 걸어 본 결과 균열의 조짐이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오늘 신고 출근하였는데, 뒷굽만 교환하면 어느 정도는 사용이 가능하겠다만, 이 둘을 어찌할까는 잠시 미룬다. 신도 이제 많이 있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어쩌면 새 신을 사서 신을 기회도 가져야 경제도 돌아간다. 또한 운동화를 더 신게 될 기회가 많을 듯하다. 신발장 하나 정리하는데 미련이 이토록 많다. 추억이 있는 구두라 그렇다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신발장 정리를 마친다. 한 라인이 비었다. 정여사 신도 정리를 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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