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벌판의 너는 어찌 사느냐: 자연의 경이로움]
선생을 하던 친구는 시어머니께서 살림을 도맡아 주시고, 아이들도 양육해 주셨다. 친구는 늘 그런 시어머니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감사의 마음은 가지지만 불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너무 세심하고 꼼꼼하셔서 나중에 하려고 숨겨 놓은 세탁물도 다 찾아내셔서 세탁하시고 정리하시고, 그런 과분함에 대한 불만(?)도 털어놓기도 했다. 듣는 우리는 충분히 이해했다. 에이 눈 좀 감아주시지.
그러다가 문득 시어머니께서 먼 길을 가셨다. 그녀가 떠난 자리를 자신이 메꾸어 가던 친구. 그녀는 시어머니의 손길이 그렇고 넓고 깊을 줄을 그제서야 깨달았다고 했다.
화장실의 겨울과 세면대와 욕조는 저절로 늘 그렇게 깨끗한 줄로 알고 살았는데, 하루만 청소를 안해도 엉망이었다. 싱크대는 급히 설거지를 해치우고 물을 채 닦고 가지 않으면 그 물대가 어른거리고. 집은 어지러는 아이도 없는데 청소할 게 뭐가 있나 싶었지만 손길과 눈길이 하루라도 덜 미치면 집은 언제라도 엉망이 되었다고 했다. 등등.
출근길 가로수는 늘 그대로 생글거리면 사는 줄 알았다. 여름에 시원함을 주었고 행복감을 주었고 가을에 낙엽도 날려주어 거리를 인간답게 해 주던 가로수. 그런데 그 길을 늘 걸으면 살펴보니, 가로수는 그냥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봄에는 잡초를 뽑아 주어야 했고, 여름으로 넘어갈 때는 가지치기를 했다. 한 여름에 가물 때에는 물을 뿌려 주어야 했고, 가을에서 겨울로 갈 때는 다시 키높이를 맞추어 자르고 치고 정리가 이루어졌다. 심지어 이렇게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낙엽이 다 지니 큰 가로수는 아파트 이사 때 사용하는 사다리 차가 와서 가지를 다듬었다.
세상에 그냥 그대로 저절로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 없는 게 아닌가 했다. 겨울이 깊어지니 최저 기온이 영하를 치닫게 되자 나무들은 급기야 짚으로 된 방한 옷을 입기 시작했다. 홀로 선 나무들은 반항복을 입고 무리지어 선 키 작은 나무들에게는 방한벽을 쳤다.
가로수는 한 번 심어 놓으면 저절로 크는 자연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시어머니가 가시고 나서야 그 빈자리가 실감나는 것처럼 가로수길을 사시사철 1년을 걸어보니 깨닫게 되는 것이 많다. 가로수는 혼자 크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들의 손길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문득, 영하의 추위에, 눈에, 비바람에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야생의 나무들이 마음으로 다가온다. 얼마나 외롭느냐. 너는 얼마나 장한가! 얼마나 경이로운 생명체인가. 추위뿐만 아니라 혹한의 고온에서도 자라는 선인장이여! 그대들은 곱도다. 자연 그 자체로서 경이롭다.
곱게 방한복을 입은 가로수를 보면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연에 순응하면서 대응하면서 삶을 살아내는 야생의 나무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인간의 삶 속에서도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살아내었어야 할 사람들의 노고를 기억하고 마음이 먹먹하다. 자연은 아름답고 경이롭고 그리고 경외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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