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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보다 더 가벼울 수는 없다: a very simple Thought on heavy Topics
EUREKA/COSMOS & nature

무제 2: 천라지망

by 전설s 2021.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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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2: 천라지망]

그물로 만든 해먹(사진은 pixabay에서)


사주 공부를 하다 보면 별의별 용어들과 의혹과 해석과 상상력이 동원된다. 초보라면 처음부터 시작하니 그나마 괜찮지만 엉터리 초보는 더욱 천방지축이 된다.


명리학을 취미로 공부를 하던 친구가 전설더러 천라지망 살이 있다고 했다. 상상하기를 하늘에 비단이 펼쳐있고 땅에 그물이 있으면 정말 좋은 것 아닌가. 흡족했다. 상상만 해도 아름다운 것이지 않나. 하늘에 아름다운 비단이 펼쳐져 있는 인생이라니. 그리고 땅에 그물이 쳐져 있으면 안전하다는 뜻 아닌가. 해먹이 퍼뜩 생각이 났다. 완전 자연속에서의 안락아닌가 하는 생각과.


천라지망이라는 한자 표기도 모르면서 상상을 했더랬다. 그런데 천과 지가 하늘과 땅인 것은 맞는데, 라는 비단이 아니라 그물 라 였다. 망은 상상대로 그물 망. 다시 말하면 하늘에도 그물, 땅에도 그물이라는 한자 뜻이다.


그리고 명리학적으로는 내가 상상한 것과 참으로 다른 의미를 지닌 말이었다.


하늘과 땅에 모두 그물망이 있어서 갇힌 신세라는 것이다. 갇히긴 하였으나 주어진 임무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천라는 하늘과 정신이 맛닿아 있고 지망은 땅과 소통의 문이 있어서, 천라지망을 품은 사람은 하늘과 땅 즉 우주의 기운을 호흡하는 자라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도우는 일을 하여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그물에 갇혀있으니 그 답답함은 천문과 지문으로 소통의 길로 해소의 기회를 주고, 그 해소의 답례로 만나는 모든 이에게 "살아갈 이유"나 "삶 그 자체"에 대한 상담 듣기 필요시 조언하기 등등을 통해 봉사하여야 하는 운명을 지게 된다.


특히 기억해야 할 지점은 다른 사람에 대해 해코지를 하게되면 반드시 그 해가 자신에게 되돌아 옴을 명심하고 언행을 살펴야 한다는 것.


어느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은 다른 사람에 대해 나쁜 마음(원망/나쁘게 되길 바라기등)을 먹었더니 실제로 그 상대방에게 상응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여러 번 관찰을 했단다. 그래서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을 한다고. (나중에 보니 그 친구도 천라지망을 갖추었네)


그렇다면 전설은 그런 일이 없었는가 하고 관찰을 해보니, 친구에게 저 말을 듣기 전의 일들은 일단 모르겠지만 그 이후 관찰한 바로는 나에게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건 나에게 와서는 강도가 약했다. 남의 불행을 염두에 두거나 염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왜냐하면 전설에게 해코지를 하는 사람이 없는데 전설이 굳이 악감정을 품을 이유가 없었고, 설사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전설은 미래를 보며 살아서 전설에게 해코지를 한 그들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불행을 관찰한 바는 없지만, 나랑 주파수가 맞지 않는 사람이나 사건에 대하여서 마음에 품은 일은 그 것이 그대로 진행되는 것은 많이 보아왔다. 예를 들면, "이 집엔 다시 가지 않아야겠다"라고 판단을 했다면, 그 집에는 저절로 가 있지가 않았다. 무의식이 작동을 하는지는 몰라도.


그래서 가능한한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일이라도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꾸어 생각한다. 남도 불행하게 하고 싶지 않고, 본인의 불행도 목도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실현되는 것을 보고 싶지도 않아서이다.


친구와의 이런 대화가 있기 전에도 전설은 긍정적인 사람이었는데, 이 대화 이후에 더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전설 사전에 "부정적"이라는 말이 없어진 지가 오래되었다.


천라지망은
쉽게 말해서 우주의 이치를 깨닫고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고 도와주고 살아라는 명리학적 의미가 있다. 긍정적이면 훨씬 더 잘할 수 있지 않겠나. 심오함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버스 타고 내리다가 할머니가 무거운 짐에 허덕거리면 짐을 슬쩍 들어주면 이미 실천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 살다보면 하늘의 그물은 비단으로, 땅의 그물도 비단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그리고 하나 더 생각하고 있다. 하늘의 그물과 땅의 그물의 크기를 무한 확장시킬 방법을 연구 중이다. 갇히되 충분히 자유로운 세상을 여는 방법.


[플러스]
그물이 하늘과 땅에 걸쳐 나를 에워싸고 있으니 자유롭게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일이 없고, 오히려 하고 있는 일 마저 막혀서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여 꺼리는 살이다. 또한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도 녹여져 있다. 살아보니 막혔다고 판단할 수 있는 일들은 있었으나 그것으로 인하여 괴로운 적은 없었다. 단 하나만으로 해석을 하는 학문이 아니라서 그럴게다. 때가 되면 더 깊게 이해가 되지 않을까? 희망을 품고 산다.

그물은 나를 에워싸고 있을지 몰라도 나는 그물을 미학적으로 관찰하고 그 성질을 연구한다. (사진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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