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고르는 기준: 러닝 타임 120분 이상]
어릴 때부터 어느 하나에 꽂히는 성격이 되지 못했다. 과목 선호도에 있어서도 어느 한 과목을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았고 어느 한 과목에 특출함이 있지도 않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이면 좋아하는 선생에게라도 꽂히지 못했고 커서는 연예인의 팬 대열에도 끼지 못했다. 영화나 책도 그러한 경향이 있다. 어느 작가를, 영화 제작자를, 감독을, 배우를, 캐릭터를 열렬히 사랑한 적이 별로 없다. 물론 몇 개는 있지만 그 사람들의 작품을 찾아 볼 열의가 불탈 만큼은 아니라는 말이다.
호불호가 불명확한, 아니 어느 하나에도 팬이 되어보지 못한 경험의 소유자는 어떤 영화를 볼까? 예전엔 우리나라의 영화를 잘 보지 않았다. 그러나 러닝 타임이 120분을 넘어가는 영화는 그 긴 시간의 노력을 높이 사서 관람을 하러갔다. 우리나라 영화는 필히 120분을 1분이라도 넘겨야 했고, 외국 영화도 당연 그러했다. 외국 영화가 당첨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왜 그랬을까?
속도감이 전설의 뇌구조와 맞지 않았다. 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10분 동안 처리하면서도 그 내용과 감정이 다 전달될 수 있는 분량이,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한 시간 이상, 아니 그 10분의 분량으로 한 편도 제작이 가능하게 느껴지리만큼, 우리나라 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주로 전설이지만) 뇌의 피로를 느끼게 했다. 너무 느린 전개와 내용의 적음. 영화 내용이나 촬영의 기법이나 그 무엇이라도 [깊이와 넓이]의 측면에서 전설의 뇌를 충족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재밌고 행복하려고 보는 영화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하여 아예 관람을 하지 않았다.
러닝 타임 120분이 넘어가면, 내용에 뭐라도 좀 더 들었겠거니 하면서 보러갔고, 그러다 보니 이제 우리나라 영화도 제법 좋은 수준에 이르렀다. 제법 러닝 타임이 긴 영화도 출시되었고, 이제 내용도 조금 깊이와 넓이를 더해갔다.
영화 매니아들의 영화 고르는 솜씨가 부럽다. 매트릭스 감독에 꽂혀서 그 감독의 작품을 다 찾아본다든가, 스피드가 좋아서, 차가 좋아서 빈 디젤의 작품을 다 찾아본다든가, 스필버그의 스케일이 너무 좋다든가. 혹은 마블이 제작한 작품은 몰아 본다든가, DC제작품을 고른다든가. 이런 구체적이고 명확한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 참 부러운 것이다.
전설은 주로 긴 것을 골라본다. 단편은 러닝 타임이 120분 이상일 것. 시즌제로 하는 것은 시즌이 길면 고르는 경향이 있다. 길수록 담을 것이 많을 것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전설의 편견이 그 기준이다. 다른 기준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보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참으로 좋겠다만, 그런 기회의 장을 만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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