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들의 김 빠진 대화: (S)he said...blahblah]
유학 시절 후반은 철학과 과정을 들었는데 그 기간에는 기숙사에서 나와서 주택지에 세를 살았다. 1층은 주인 남매가 열대어 가게를 했고, 2층은 신학 전공 친구 둘이 세를 들었고, 3층엔 전설이 살았다. 2층 친구들과 매일 밤 와인 1병을 놓고 대화를 했는데, 가끔 다른 친구가 동참을 할 때가 있다. 일반 주제에 대하여는 그다지 불편함이 없는데 전공 관련하여 대화가 진행이 되면 친구들이 짜증을 내는 순간이 있다. 주제 A에 관해서 대화를 하다면, 어느 철학자는 어떻게 말했고, 누구는 어떻게 해석을 했고.... 모든 철학자가 동원될 정도로 똑똑함을 보이는 친구가 분명 있다. 복습을 하게 되는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시간의 낭비가 된다. 다들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때, 누군가의 입에서 반드시 나오는 말이 있다.
"다 알겠고, A에 대하여 너의 생각은 무엇인가? 그것을 말하시오."
기말고사를 준비할 때가 되면 친구들은 스터디 그룹을 짰다. 그래서 배운 내용에 대하여 자신이 제대로 이해를 하고 있는 지를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이럴 때는 철저하게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기준으로 대화를 진행해간다. 이런 모임에서는 절대로 "너의 생각"을 묻지 않는다. 수업 내용에 철저하게 집중하여 이해를 주고받는다. "나는 이렇게 이해를 했는데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가?" "나는 이렇게 이해를 했는데, 어디서 이런 이해 차이가 오는 것일까?" 그리고 예상 질문을 서로 나누고 예상 답도 나누어 본다.
희한하게 스터디 그룹을 할 때는 너의 생각을 묻지 않는데, 그냥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는 너의 생각을 말하지 않음에 모두 피곤해 했다. 사실 소위 말하는 지식인들의 대화는 그러해야 하지 않겠나. 누가 어떤 내용을 어떻게 말했건 그 모든 것을 수용한 후에 나의 언어로 된 나의 의견"을 말해야 하는 것이다.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그 정보를 소화한 지식을 적확하게 말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었다.
[플러스]
Philosophy of being을 가르친 교수는 그 자신이 수업 시간에 말하는 바로 그것이 교재였다. 그래서 우리는 transcript(수업내용을 녹음하여 받아쓰기로 만든 교재)를 만들어 공부를 해야 했다. 할 만했다. Writing 시험 후에 성적 확인을 하러 갔는데, 예상보다 낮은 것이었다. 왜?
교수님, 문제에 대하여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다 언급을 했는데, 성적은 왜 이럴까요?
네 생각이 없잖아.
헐!!!!!!!!!!
대화할 때는 짜증을 내면서, 정작 시험에서는 왜 이랬을까? 왜 내 생각을 적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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