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은 수다, 디저트는 지금 금방 따 온 오이]
친구의 남편은 우리보다 연배가 높으시다. 코로나 방역에 협조하기 위해서 모임을 미루어 왔는데 기회가 되어 의기투합을 했는데, 친구 신랑이 자신의 집을 내어 놓으시면서 집에서 모이라고 한다. 식당에서도 8인 이하는 두 테이블로 하니 가능은 하겠는데, 일단 집에서 안전하게 만나라고 하신다.
전에도 이 친구 집에서 포트럭 파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친구들이 음식을 직접 만들 시간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래도 자신이 먹어보고 친구에게도 맛보게 해주고 싶은 음식들을 사들고 왔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비가 많이 와서 들고 오는 것은 너무 불편하여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친구가 주문해 놓는 것으로 했는데, 그것도 상당히 편리했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친구들은 할 이야기가 많다. 졸업 후 얼마간은 직업 관련 이야기만 하더니 요즘은 내용이 다채로워졌다. 한 인간의 일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하여 모든 주제에 대하여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맥주와 소주가 번갈아 등장을 하고 각자 주문(?) 음식들을 안주로 대화는 깊어간다. 지금 우리가 만나는 이 순간에 가장 나를 스트레스받게 하는 일들을 꺼내면 들어주고, 그와 연관하여 자신도 겪었던 경험의 결과물이 또 공유된다. 물론 답은 스스로 알아가는 것이다. 정답은 없고 해답만 있다. 인생이 원래 그런 것이니까.
수다의 밤은 깊어가고, 비도 점점 거세게 내린다.
마무리를 할 즈음에, 친구 신랑이 오이를 두 개 가져 오셨다. 장대비를 맞고 있던 두 개를 따 오신 것이다. 직접 키우신 것이니 어깨 으쓱하시면 주신다. 급히 씻어서 500원 짜리 동전 5개쯤 두께로 잘라서 한 사람에 앞에 하나씩 일순하고 남은 것들을 먹던 상추 위에 올려놓았다. 완전 맛나게 생겼다. 겉은 재래식 조선호박 같은 색의 생김새를 가졌는데 안은 오이다. 씨가 알맞게 꽉 찬 단단한 오이. 속도 잘 생겼다. 입 안 가득히 오이 향과 적당히 퍼지는 오이 즙, 그리고 씹는 맛이 좋았다. 우리 치아의 힘이 이 정도는 즐길 수 있으니까.
10월에 문경새재에서 또 깊고 묵직한 수다를 하자고 다짐하며. 그때는 코로나가 제법 평정되기를 기원하면서. 접종 완료한 인구가 매우 많을 것이기에 그렇지 않다면 4명만 모이도록 줄을 세워야 한다. 경쟁률이 심할 일이 생기지 않기를 소망한다.
[플러스]
오늘 집을 내 준 친구는 코로나로 인하여 수입이 제로에 가깝게 된 불쌍(?)한 친구이다. 사실은 이 친구의 마음을 달래주려고 시작한 모임이었는데 결국 그녀의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되고 말았다. 친구는 cheer-up이 되었을까. 아니라면 다시 만나자. 다른 몇몇 친구도 위로받을 일이 있는 듯이 보였는데, 이제 위로 정도는 스스로 챙겨 갔으리라 믿는다.
그녀의 냉장고에는 여름이면 항상 수박이 있다고 한다. 신랑의 최애 과일이라고 하는데 몰래 꺼내 먹고 말았다. 뒷일은 모르겠다. 보태 주고 와야 하는데 그런 일을 저지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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