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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보다 더 가벼울 수는 없다: a very simple Thought on heavy Topics
SERENDIPITY/TRAVELS abroad

가우디와 구엘 그리고 콜라를 사랑했던 아가씨

by 전설s 2021.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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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와 구엘 그리고 콜라를 사랑했던 아가씨]

구엘공원의 화려한 신선함!!!!. 파밀리아 사그라다 사진은 너무 많으니 구엘공원의 칼라풀한 사진을 pixabay에서 빌려왔다. 

 

다리는 힘차게 걷고 있지만 귀는 자연에 열려 있지 않다. 원래 걷기나 산책은 모든 감각을 자연에 열려 있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는 하지만, 정신적 스트레스의 치유가 걷기의 목적은 아니라서 귀에는 늘 이어폰을 넣게 된다. 

 

 

이번엔 바르셀로나의 위대한 건축인 성가정성당(약칭하여 Familia Sagrada)을 설계하고 건축한 가우디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의 생애를 논하면서 그 당시의 건축풍이나 화풍들도 함께 소개가 된다. 자신도 건축가라고 밝히는 이 사람이 알려주는 가우디의 생애는 듣기만 해도 상상이 되어 벅차다.

 

 

아주 먼 시절의 건축가도 아니고 1852년에 태어나 1926년에 사망하였으니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살다 간 사람이 아니다. 우리 할아버지 정도까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된다. 30대에 시작한 파밀리아 사그라다를 죽을 때까지 41년간, 설계와 건축에 몰두한 미혼의 한 어른 남자는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자신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시대를 뛰어넘는 자신만의 독특함으로 구현시켜 놓고 떠난 인물이다. 

 

 

대학 졸업을 거의 골찌로 했다지만 그는 재학 졸업과 동시에 여러 작업에 참여하는 등 직업과 업적 중심으로 보면 참으로 운이 좋은 사나이였다. 한 단계 단계마다 우연히 혹은 필연으로 젊고 큰 경험치도 없는 그에게 기회가 주어졌고 그 기회를 천재적으로 마무리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평생 그가 건축이라는 것을 예술이라는 경지로 끌어올려 그의 걸작을 낼 수 있게 무한한 후원(여기서의 후원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재정 지원은 한 부분이고, 건축일을 맡기는 것 그리고 그 건축을 설계하고 완성하는 각 단계에 비용을 대고 참견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을 했던 구엘과의 만남이 결정적이었다. 

 

 

젊어서 구엘을 만난 가우디. 구엘은 새로운 세상의 흐름을 보는 눈이 있는 신흥 사업가였고 가우디는 건축가적 재능을 가진 천재였으니, 그 둘의 만남은 바르셀로나 시민뿐만 아니라 전세계인에게 즐거움과 경이로움을 주고 있다. 예술적으로 직업적으로는 한없이 행복한 가우디였으나, 개인적으로는 가정도 꾸리지 않았고 오직 건축으로 표현되는 아름다움에 매료된 어찌 보면 외로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의 말미에, 한 참가자가 말한다. 가우디와 구엘중에 누구로 태어나는 게 좋은 게 묻는다면 자신은 구엘로 태어나고 싶다고 한다. 그 이유는 구엘은 재정적 성공으로 쟈신도 해피하고 가우디에게 후원과 지원을 할 수 있었지만, 가우디는 건축이라는 예술의 경지에는 이르렀으나 결혼도 하지 않고 일만 하다가 가지 않았는가. 가우디를 위하여 슬퍼해 주는 것이었다. 가우디가 건축에 자신의 모든 열정을 넣어서 살아있는 건물을 만들어 내고 있을 당시의 기쁨을 우리도 느낄 수 있지만, 이 참가자의 측은지심에도 나름 공감을 하게 된다. 

 

 

가우디의 생애에 부러움과 공감을 지니는 가운데서 발걸음은 계속 제 갈길을 가고 있다. 바르셀로나를 다시 가게 될 것이다. 가우디의 마지막 작품인 파밀리아 사그라다가 아직 미완이지만 곧 완성이 된다 하니, 이번 주에 들은 영상물을 다시 기억하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가우디의 건축 작품을 보고 싶다. 20년 전에 갔었으니 건축의 완성도가 다를 것이고 전설의 지식도 달라졌으니 더 감미롭지 않겠는가. 

 

 

[플러스]

지금은 코카콜라를 잘 마시지 않는다. 피자를 먹을 때는 사실 최고로 시원하게 냉각한 콜라가 환상의 콤비이긴 하지만, 대학 때는 피자가 없이 마시는 콜라도 나름 "죽음의 맛"이었다. 커피와 콜라를 고르라고 하면 당연 코카 콜라였다. 그 이유를 생각하니, 학교 매점에서의 콜라는 항상 기분 좋은 온도로 서비스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넣은 시각에 따라 냉각의 정도가 매번 다른 캔이나 병 음료와는 달리 언제 주문해도 콜라 배분기에서 바로 나오는 그 온도의 코카 콜라가 중요한 요소였던 것이다. 그리고 아직 커피에 물들지 않았던 몸은 콜라가 가지는 얕은 농도의 각성제만으로도 해피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동기들에게 아무래도 코카콜라집 사장에게 시집을 가서 콜라를 원 없이 먹어야겠다고 토로를 하니, 모두 말렸다. 이유인 즉, 입맛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 일단 돈 많은 사람에게 시집을 가는 것이 더 안전하겠다는 것. 원 없이 사 먹고, 입맛 바뀌어도 다른 것도 원 없이 사 먹을 수 있다는 논리.

 

 

가우디와 구엘의 이야기속에 가우디를 불쌍히 여기는 저 참가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불현듯 코카콜라를 원 없이 사 먹을 수 있게 돈 많은 사람에게 시집가는 게 낫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이 났을까. 천재 건축가를 고용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것. 건축이 아니라 조각이나 회화를 좋아하게 되면 또 바꾸어 후원할 수도 있는... 그런 맥락으로 생각이 난 것일까. 

 

 

콜라를 원없이 사먹을 만큼 스스로 번다. 어쩌다보니. 그러나 남에게 원없이 사 줄 정도는 아닐세. 몇 잔은 충분히 사줄 만큼만 벌고 산다. 욕심내면 욕심낸 대상의 노에가 된다. 조심해야 한다. 

 

 

이 콜라병이 참으로 예뻤다. (사진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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