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게도 양면성은 존재한다: 평안/행복 vs 두려움/공포]
음악을 들으면 산책을 하고 있는데, 다운로드한 기억이 없는 음성 녹음이 흘러나온다. 스마트폰을 바꾼 지가 얼마 안 되니 그런 기억은 더 또렷한데. 무슨 소리인가 들어보니, 대학 동기가 요새 미국에 있는 조카에게서 영어를 배웠다고 동기 방에 올린 음성 메시지였다. 회사 컴퓨터에 다운로드를 해서 들어봤는데 소리가 이상해서 듣다 그만둔 기억이 났다. 그러다가 폰에도 저장을 해 둔 모양이었다.
내용인즉,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날의 주제는 "나를 두렵게 하는 것들"쯤이었나 보다. 생전 처음 생각해보니 자신은 어둠과 유령(혹은 귀신)과 남 앞에 나서기와 높은 고도에서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사람마다 두려움을 느끼는 지점이 다른 것은 당연하겠다. 어떤 연유로 "어둠"을 싫어하는지 아니 왜 "어둠"에서 공포 내지 두려움을 느끼는지 그 내면의 이유를 물어보지는 않았다. 본인이 인지하는 이유가 있기도 하겠지만 이유를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물어보지는 않았다. "두려움"이라는 주제가 신선하고 처음 생각해보는 것이라 재미있었다는 것은 알겠으나 그녀가 녹음한 그곳에서는 그 연유까지 말해 놓진 않았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녀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으리라. 그것은 그녀의 몫이겠고.
다만, 전설과는 참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구나 했을 뿐이다. 주택에 살다가 아파트에 살기 시작한 이유로 참 좋았던 것 중의 하나는 화장실이라는 존재였다. 화장실은 다른 모든 곳보다 조용했다. 불을 켜지 않으면 거실로부터 오는 백열등 만조 그 마한 구멍 사이로 빛의 존재를 알 수는 있으나 거실의 불을 끄거나 눈을 감으면 사방이 조용하고 깜깜한 공간이 되는 것이었다.
물론 다른 집에서 화장실을 사용하는 소리나 세탁기 도는 소리가 늘 있게 마련이지만 시간을 잘 잡고 운이 좋으면 아파트에서 느낄 수 있는 [적막감=고요]를 즐길 수 있게 된다. 눈을 감고 조용히 마음을 가라 앚히면 말할 수 없는 행복한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집이 좀 넓은 사람들이나 QT(quiet time)을 가질 만한 공간을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경우가 아니면 이런 기분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모든 방은 창문을 가지고 있지 아니한가. 암막 커튼을 집에서 사용할 리도 없고.
여하한 화장실은 그런 조용한 적막감이 있는 평화의 순간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공간이라서 좋았다. 요점은 화장실이 아니라 화장실이 만들어내는 [어둠/적막감/고요함]이 너무 행복한 것이었다. 어떤 느낌인지 더 분석해 들어가자면 [어둠/적막감/고요]는 마치 [엄마 자궁 안의 안전화 평화]를 떠올리게 한다. 태아적 기억을 내가 어떻게 인지 하겠는가만, 인지할 수 없을지라도 뇌 속에 각인되어 있을지는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느낌이 엄마 뱃속에서의 느끼는 평화와 안정 혹은 안전이 아니었을까. 동시에, 엄마의 자궁 안에서 태아로 존재할 그 당시에 엄마가 좋은 마음으로 나를 뱃속에서 키우지 않았나 하는 감사의 마음은 가져보게 된다.
엄마의 자궁 안 같은 평화와 고요와 안전과 즐거움이 느껴지는 어둠. 한 사람에게는 좋은 "어둠"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상황일 수도 있겠다 싶게 만든다. 친구의 음성 녹음이. 친구야, 나는 어둠이 너무 좋은데. 너는 어떤 기억이 있는 것일까.
[플러스]
2006년쯤이었을까. 우리나라 국립공원을 둘러보아야겠다는 전국의 국립공원 명산을 올라 보러 다녔다. 밤 버스로 도착하여 설악산 울산바위를 홀로 오르는데, 울산 바위의 입구에서 정상까지 나무로 계단을 층층이 만들어 놓았었다. 계단을 만들어 놓으니 얼마나 편리하겠는가.
그 편리하겠다는 생각은 순식간에 공포로 바뀌었다. 나무 계단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산의 높이와 울산 바위의 높이가 얼마나 높은지 계단 사이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공포가 엄습해왔다. 친구가 말하는 [높이가 주는 공포감]이 이런 것일까. 고소공포증은 이런 높이가 주는 공포를 느낄 상황에 있어 봐야 자신이 그런지 아닌지를 알게 된다. 공포를 해결할 수 있으면 일시적인 경험이지만 높은 곳에 있을 때마다 공포스럽다면 고소공포증을 인지하고 있어야 하니 말이다.
심호흡을 수 십 번을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면서 울산바위에 올랐다. 올라갈 때는 잡을 것이 있는데, 내려갈 때는 발을 헛디딜 확률이 높을 듯한데 이를 어쩌나 하는 걱정도 일단 안고서... 꼭대가에서 바라보는 설악산은 오를 때의 그 공포감을 말끔히 잊게 해 주고도 남았지만.
그러나 내려올 때는 계단 자체가 주는 높이감은 있었으니 계단과 계단이 거의 맞닿은 느낌이라 시선이 계단 사이로 가지 않게 설계가 되어 오히려 내려올 때는 고소공포증을 느낄 사이도 없이 내려왔다. 다만 헛디디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지금도 가슴이 서늘하다. 계단 사이로 보이던 느껴지던 그 엄청난 높이감. 2006년에서 15년이 흘렀으니 지금은 더 안전하게 만들어 놓았으리라. 코로나 지나가고 나면 다시 한번 가봐야겠다.
우리 친구는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 계단을 오를 때 공포감이 엄습했지만 고소공포증 정도는 아니었던 듯하다. 아직 여행다니면서 그런 공포감이 그날 이후에는 경험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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