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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훈육을 말로 마무리 하는 이유: 한국 어른도 필요하다

by 전설s 2022.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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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훈육을 말로 마무리하는 이유: 한국 어른도 필요하다]


외국 영화에서 아이들을 훈육시키는 과정을 보면, 야단맞는 상황을 인식하게 하고 훈계를 하고, 그러고 나서 반드시 하나 더 하는 과정이 있다. 이해한 바를 말하게 하는 것이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고 그래서 어느 지점을 고쳐야 한다는 것을 말하게 한다. 정확하게 말하고 나면 그 아이는 이제 다시 자유롭게 된다.


왜 그렇게 할까?


아이가 잘못을 저지를 때에는 첫째로, 그것이 잘못인지를 모를 때이다. 그럴 때는 집에 가서 나중에 조용히 훈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발생한 즉석에서 저지른 그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훈육을 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이다. 둘째는, 잘못인지를 알면서도 잘못을 한 상황에 발생한다. 고의로 그랬거나 어쩔 수 없이 하였거나. 이 경우에도 즉석에서 왜 그랬는지를 묻고, 고의에서는 이유를, 어쩔 수 없는 경우엔 해명을 들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부모가 훈육한 바를 소리 내어 말하게 한다. 이유는, 모든 이해는 자신이 사용하는 자신의 뇌가 익숙한 언어로 정리가 되어야 제대로 이해한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언어, 어른들의 언어로 교정된 것은 아이들이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로 전환을 해서 저장을 해야 훈육이 완성된다. 필요하면 새 단어를 배우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그것을 말함으로서 말하고 듣고 기억하기가 한꺼번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 것이 제대로 된 훈육이기도 하고, 말을 배우는 과정이고, 언어를 습득하는 순간이 되기도 하며 말의 책임을 배우는 순간이 된다.


외국 아이들은 그러한데 우리나라 아이들은 어떠한가. 아직 전설의 맘에 드는 과정은 관찰하지 못했다. 다만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에서 등장하는 조언가(교육자)는 그것을 제대로 해 내고 있었던 기억은 있다.


어른들은 어떨까?


연인과의 다툼, 부부와의 언쟁, 자식과의 불화. 친구끼리의 불편함, 이 모든 것은 관계의 한 과정이긴 하지만 발생하고 나면 불편해진다. 어른들도 외국 아이들의 훈육에서 처럼, 언쟁의 이유를 서로 납득한 다음에 상대방이 자신의 언어로 말하게 하면 그런 일이 덜 발생하지 않을까.


어른이니까 이 정도로 말하면 알아듣겠지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너의 언어로 네가 말했기에 그러하다. 자신의 언어로 말을 해야 그것이 자신의 뇌에 저장이 되고 재발률이 줄어든다. 어른들이 이런 과정을 할 수 있을까? 견딜 수 있을까? 모르긴 해도 어른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여자와 남자. 그게 아니라도 각자의 뇌의 삶은, 언어의 삶은 너무나 다를 것이기에 그러하다. 언어로 생각한다. 상대방은 나의 언어가 아니라 자신의 언어로 생각한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와 상대가 사용하는 언어가 유사할 수록 공감은 높은 것이나, 살아보니 어떠하오? 생각보다 그런 사람이 많겠소. 그렇지 않다. 다들 자신의 언어가 만들어 내는 세상에서 살짝 단절된 채로 살아가고 있다. 이해를 다 하는 듯이 보여도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불편해도 깨달은 바를 말로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그것을 잘하는 것이 대화를 잘하는 것이고, 보다 더 공감하는 관계를 만들어 가는 기본이 될 터이니 말이다.

Blah blah blah...understood?/yes/now tell me what? {사진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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