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유효기간:시절 인연]
원래가 뒤를 돌아보는 성격의 사람이 아니었다. 항상 미래를 생각했고 미래를 그렸다. 과거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니 남들만큼의 과거에 대한 기억이 없다. 기억을 자주 하다 보면 그것이 장기 기억으로 더 굳건하게 저장이 될 수 있는데 지나간 일을 회상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으니 시시콜콜 기억하는 능력이 저하되어 있다. 아주 인상적인 것들이나 특정한 사건만 겨우 저장고에서 기억이 되어 있는 것을 요즘 알았다. 글을 적다 보니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격도 그러하거니와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를 적었더니 일기에 기록한 것은 "기록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많은 사건과 에피소드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반면에, 과거에 문을 닫고 미래를 응시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남들보다 미리 산 생각한 것들은 많았다.
나에게 일어난 사건, 개인적인 사건들은 그렇게 진행되고 마무리되어도 문제가 없다. 개인적인 일이기에.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희한한 말을 보았다. "인연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라는 말.
"인연"이라고 할 때는 전생부터 끈이 있어 현생으로 이어지고 내생에서도 엮일 수도 있는 그런 특별함이 전제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가. 그런데 "인연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말을 접하는 순간, 그 전제가 참으로 허망하고 터무니없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생각을 해 본다.
어렸을 적 전혀 기억이 없는 친구들.
초등학교 5-6학년 때 절친들.
중학교 때 절친들.
고등학교 때 절친들.
그리고 대학교 때 절친들을.
분명히 내게도 절친들이 있었다. "절친"이라고 이름을 부칠 정도가 되면 평생을 함께 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실제로는 소식도 모른다. 찾아 보면 찾아지기는 할 텐데, 그 시절이 지나가버렸기 때문에, 만나지 않은 시절이 더 길어서 이제 인연이 단절되어버린 것이다. 단절된 이유를 찾아보니 갈림길마다 이유가 있기는 하다만, 그래도 이어져야 할 인연은 이어져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희한하게도 단절이다.
비단 나만이 그렇겠는가. 심지어 사랑으로 결혼한 사람들도 "인연의 끝"을 보는 마당에 학교를 같이 다닌 인연들은 수학기간이 끝나면 멀어지는 것이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럽다. 더구나 나처럼 과거를 흘려보내는 사람에게 "인연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말은 너무 적확하지 않는가.
아아!!!!
나에게 특별한 하자가 있거나 친구에 대한 사랑이 없어서 인연이 흐려지는 것이 아니었다.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나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인연에도 유효기간이 있음을 새삼 느낀다. 선친과 인연이 빨리 끝났고 형제 자매들은 대학교 때 이미 별거했네. 함께 살 인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반면에 정여사와는 인연이 깊구나. 이토록 오랜 기간 우리가 엮여 사는 것을 보니.
불교도는 아니지만 문득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모든 인연은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 모든 사물의 현상은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 시기가 되면 저절로 일어난다. 또한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는 말도 있다.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 인연에 오고 감이 있고 그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것을 현대의 트렌드로 바꾸면 [인연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불자들이 저 말을 할 때는 자연스러움 속에 일어나는 것만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자신의 의지도 개입된다. 인연이 다한 경우에는 스스로 끊어내는 것이다. 더 이상의 스트레스 상황은 용납하지 않으면서 인연을 거절하는 것. 스스로 밀어내는 것. 거부하는 것. 고통 속에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에서 진화하여, 아예 시간 단축을 용인하는 것이리라. 시절 인연을 빨리 불러온다고 해야할까.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고, 흘러갈 인연들은 급히 지나가시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전설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 보겠다. 어서 지나가시라. 유효기간 끝난 인연들이여!!!!
귀인이나 소울메이트는 유효기간이나 시절 인연을 뛰어 넘게 될까? 바람도 이 그물에는 잠시 머물지 않을까? 소망을 굳이 가지지 않아도 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갈 것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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