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감수한 정여사]
자다가 잘 깨지 않는데 눈을 떠보니 새벽 3시.
무슨 소리를 듣기는 했는데 우리 정여사 방에서 이동식 변기 뚜껑 소리인가 보다 하고 계속 잠을 청했다. 그런데 코끝에서 퍼지는 이 냄새는 찐한 오줌 냄새다. 정여사의 파자마에서 자주 맡는 냄새이긴 한데 좀 더 진하다.
벌떡 일어나 정여사 방을 가보니 난장판이 되어있다. 변기는 쏟아져 있고 방바닥에 엉거주춤 앉아있는 정여사.
불을 켜고 보니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정여사의 형형한 눈빛.
일은 벌어졌고 독립심 강한 여인이니 혼자서 무엇이라도 뒤처리를 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던 것이다.
침대 밑으로 변기 내용물은 굴러 가고 입었던 파자마랑 면 상의를 벗어서 퍼지는 것을 막고, 자신은 새 옷을 꺼내 입기는 하였다. 그러나 혼자 일어설 수는 없는 몸 상태라 나름 침착하게 뒤처리를 할 수 있는 한 해놓고 이제 침대로 오를 일을 고민하고 있는 차에, 내가 등장한 것이다.
살펴보니 다친데는 없다 하는데, 2주 전에 미끄러져 불편한 왼쪽 다리에 힘이 빠진 것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마음으로는 다 나았는데 몸은 마음의 회복 속도를 따라가지 않았던 것이다. 자다가 일어나 몸이 긴장이 풀려 있기도 했고. 한 밤 자고 나면 통증 유무를 더 확실히 알 수 있는데 보아하니 왼쪽 다리에 힘을 쓰지 못한다. 침대로 올라가게 도와주는데 왼쪽 다리에 힘이 없다.
먼 화장실까지 보행기 끌고 가는 것이 위험해서 침대옆에 이동식 변기를 비치한 게 몇 년이 되었다. 말이 이동식이지 원목으로 만들어져서 제법 무겁다. 이동한다고 밀어보면 혼자서 들기도 힘들다. 도르래가 있어서 겨우 옮길 정도의 무거운 변기 안의 내용물이 어떻게 쏟아지나.
팔걸이를 자세히 보니 나사가 풀려있다. 늘 그 팔걸이쪽에 의지하니 나사가 다 풀려있어서 사달이 난 것이었다. 나사를 다 조이고 정리를 하고. 온 방안을 닦기 시작하는데 그 와중에 쏟아진 소변의 이동을 적당히 닦아놓아 나로서는 훨씬 일이 쉬웠다.
저렇게 무거운 변기가 어떻게???
다치지 않으려고 괴력이 나왔나봐.(정여사 워딩이다)
스스로도 놀랐을텐데 뒷정리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 실제로 어느 정도는 그러했다는 것이 너무 놀랍다. 나를 부르던가 전화를 하던가 하질 않고.. 대단한 여성이다.
불을 켜고 보았을 때 정여사의 그 형형한 눈빛 참으로 오랜만이다. 맑고 깊고 진지하고. 어딘가에 집중할 때 보여주시던 그 눈빛. 아!!! 우리 정여사! 나이가 많아서 몸은 말을 듣지 않지만 마음과 정신은 살아있구나.
변기 내용물이 대변은 없고 소변만 있는 것으로 우리는 각자를 위로했다. 아니면 청소하는 나나 완벽히 청소가 덜 된 방에서 생활해야 하는 정여사나 얼마나 괴로웠을 것인가.
정여사님!! 싸랑한다.
출근 전에 3번쯤 속삭이고, 퇴근해서 10번쯤 속상인다. 늘 하는 말인데 오늘도 잊지 않고 말한다.
그러니 그녀가 미안하다고 한다.
고맙다고 해야지 왜 미안하다고 하느냐? 물으니
그 상태는 이미 넘어섰다.
라고 답하신다.
그 말을 듣는데, 정여사의 마음의 깊이와 넓이가 느껴져서 가슴이 뭉클하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왜 인간은 필멸이며 생로병사를 피해갈 수 없는 것인가.
지난번엔 1년 만에 신는 미끄럼 방지용 양말을 제대로 신는 것을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놓쳤고, 오늘은 늘 사용하는 변기의 나사를 가끔 미리미리 조여주는 점검을 해야 한다는 것을 놓쳤다. 이 모든 것을 잘하는 날까지 당신은 내 곁에 있어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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