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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보다 더 가벼울 수는 없다: a very simple Thought on heavy Topics
EUREKA/COSMOS & nature

인간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심판 vs 영접하라

by 전설s 2024.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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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심판 vs 영접하라]


아름다운 세상에서 자신의 의지로 선악을 행하는데...


선악의 기준
구원 천국
의미 없는 말

아후라마즈다, 자라투스트라
이집트 사자의 서
불교와 힌두교의 윤회

이상은 책을 읽다가 적은 메모들이다.


내 삶의 무게와 결과는 내가 책임져야 하지 않는가




세계의 종교를 간단하게 접근을 해보다가 희한한 한상을 발견했다.

동양 서양을 총망라하여,
인간은 죽으면
사후 재판에서
자신의 선행과 악행으로 심판을 받고 그 결과에 따라 다음의 행보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단 하나,
기독교는 다르다.
예수를 영접하면, 사후는 보장된다. 다시 심판대에 서지 않는다. 지상에서 예수를 영접하느냐 마느냐로 이미 결정이 난다.

어떤 것이 fair 공정한가? 내가 한 행동에 대한 결과로 판단을 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예수를 영접하는 것으로 되는가?



누가 끼어들면 될까?




복잡하다.
선과 악을 정의해야 하고, 왜 선악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도 밝혀야 하고,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선악의 기준은 어찌해야 하며 피지 못할 사정은 어쩌며...

그래서
그 모든 걸을 감안 하여
절대악과 절대선만 지키면 면책이 될까?

절대악과 절대선은 무엇으로 정의할까? 시대마다 니라마다 다른 것은?



대화는 인간에게 균형잡힌 성숙을 준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 더 편리하고 공정할 지도 모르겠다 이론적으로. 선악의 기준과 정의와 변화 범위가 어떻게 되건, 기준이 하나로 결정되니 그렇지 아니한가.

동양철학과 종교에 접근하다 보면, 애초에 선악도 없는데, 이를 어찌하나? 선 속에 악이, 악 속에 선이 공존한다는데... 양의 차이로. 때론 순수악과 순수선도 있지만 확률은 낫고.

그런 고로, 기독교가 fair 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러한가?

인간의 한계 내에 있을 때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인과응보로 심판을 받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면, 예수를 영접하는 선택으로, 이미 행했던  선악이 모호해지는 역설은 어떻게 하는가? 다른 종교에서는, 이미 행한 선악의 결과는 영원히 남는다. 뉘우침과 반성은 별개의 것이다.


회개하라고 늘 말하지만, 이미 예수를 영접했는데, 회개하지 않으면 천국을 못 가는가. 친국에도 벌을 받는 장치가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굳이 예수를 영접할 이유가.

선진국과 후진국의 삶의 질이 다른 것처럼, 천국에서 받는 벌은 더 유리한가?


얏!!! 마이 라이프!!!




오늘 아침에 여러 종교에 너무 단순하게 접근을 했다. 평범한 인간의 생각으로는, 자신이 행한 모든 것으로 평가되기를 소망한다만. 모든 종교는 행위의 의도/의지보다 결과로 판명하는 것은 아닌가? 이 지점도 다음 기회에 살펴보야야겠다. 너무 단순하게 종교에 접근해 보니 역시 선명하지 않다. 더 고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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