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담보 신용대출. 부모라는 거]
감성이 매우 풍부한 날에 친구들은 이 얘기 저 얘기하다가 불쑥 부모님들의 얘기를 한다. 우리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 만났으니 그 때쯤 친구들의 각 가정이 어려울 때. 혹은 대학 이전부터 어려운 집도 있었을 터였다. 부모가 주는 향토장학금부터 학교가 주는 장학금으로 겨우 학비 걱정은 않은 친구들도 있지만 학기마다 등록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을 부모 그리고 친구들.
그때는 지금처럼 알바가 매우 활성화된 것은 아니어서 자신이 벌 기회가 적고 있다손 치더라도 몇 푼 안되니 부모의 어깨가 매우 무거운 그 옛날.
일 잔을 자주 하시던 아빠에게 어는 날 친구가 여쭈었단다.
왜 술을 드세요?
남에게 돈을 빌리러 가야 하는데 어째 맨 정신으로 가나...
수입보다 지출이 많으면 돈이 늘 궁핍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갚을 날이 언제가 될지 몰라도 일단 현생을 해결해야 하니 부모들은 자식들의 안위와 자존심을 걱정하면서 남에게 손을 빌리러 가는 일이 허다했다. 지금처럼 은행에서 대출할 여력도 안되고. 그땐 지인들에게 알음알음 빌려 쓰고 도저히 안될 때는 전문적으로 꾸어 주는 전주들에게 빌렸다. 소위 무담보대출을 발생시키는 일이 쉬웠을까.
이 친구의 아빠는 술의 힘을 빌려 그 어려운 말을 꺼내고 그 답답한 순간을 견뎌왔던 모양이다.
우리 정여사에게도 그런 일은 다반사였다. 남편 없이 재산 없이 아이 셋을 키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더구나 전문직 여성도 아니고 장사를 거창하게 혹은 알뜰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평범한 여인의 일생에 자식 셋은 버거운 존재인 것이다.
빌린 돈의 원금을 내가 직접 갚은 기억은 없지만 다달이 이자를 꼬박꼬박 가져다주는 심부름은 나의 몫이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엄마가 아침 준비할 동안 그 새벽을 가르며 나는 그 이잣돈을 날랐었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 정여사는 어떻게 전주의 마음을 움직였는가를 들은 적이 있다. 전주에 따라 상황은 다르겠지만 한 사람은 아직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사람이었다. 전주의 집에 행사가 있으면 일을 도와준다는 것이었다. 허드레일을 주로 해 주는 것이었겠지. 요샛말로 우아하게 말하면 "도우미"이고 적나라하게 말하면 "허드렛을 하는 사람"
물론 Free로.
허드렛 일을 거들다 보면 성실함을 인정받거나 free에 대한 미안함이 생겨서일까.
돈을 빌릴 성공률이 높았던 것이다.
정여사는 그랬다. 위의 이유도 있지만 그 사람이 돈을 언제 빌려주어야 한다는 날짜와 사람을 인식하게 하는데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저런 완벽함과 신중함과 꼼꼼함이라니.
눈물이 왈칵 났었다.
우리 정여사도
친구의 아빠도
느닷없이 부모가 되었을 터인데 우리를 길러들 주시느라고 애 많이 쓰셨다. 부모의 사랑은 깊고도 넓다.
감사하다.
나는 이제 좀 갚으며 사는데, 우리 친구는 부모님들이 벌써 돌아가시고 되갚을 시간이 없어서...
나라도 있을 때 잘하자.
덧붙이면,
정여사에게 돈을 빌려 준 사람중에 셋을 기억한다.
ㅇㄱ아지메는 오빠 친구의 어머니였고 이자는 미안해하면서 꼬박꼬박 챙겼지만 원금 갚으라는 압박을 주지 않았다. 무한 기다림의 소유자.
OO엄마는 전형적인 일수쟁이로서 정여사를 신뢰하여 무담보지만 고리로 돈을 빌려주었음.
OO엄마는 위에서 말한 허드렛일 등을 하며 신뢰를 쌓아야 가능했던 경우. 목돈이 급히 필요할 때 주로.
비공개구혼/정여사/개인사/무담보 신용대출/부모의 버거움/술의 힘/허드렛일/단톡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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