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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보다 더 가벼울 수는 없다: a very simple Thought on heavy Topics
EUREKA/COSMOS & nature

원효 대사의 해골 물 이야기: 무애행의 기폭제

by 전설s 2024.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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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의 해골물 이야기: 무애행의 기폭제]

갈증을 해소시켜 준 물

 

 

원효대사가 당으로 유학을 가던 길에, 마셨다는 그 해골 물 이야기를 들은 것은 꽤 오래되었다. 그리고 머리에서 잊힌 적이 없다. 그게 사실이건 지어 난 이야기건 과장된 이야기이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 7세기에 먼 길을 떠나다가 동굴에 묵을 수 있주 않았겠는가. 유학을 가다가 움막/동굴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자다가 목이 말라 더듬더듬 짚이는 데로 바가지의 물을 마시고 잘 잤다. 아침에 보니 해골바가지였고 구토를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해골 바가지였다는 것을 보지 않았다면, 구토는 없었을 것이다. 뇌는 까맣게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 해골바가지를 본 순간, 해골바가지의 깨끗하지 않은 물, 깨끗하더라도 해골에 담겼다는 자체에 구토가 발생한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분별심이 생긴 것이다. 보지 않았다면, 그런 분별심이 없었을 것이고, 마음에서의 이런 작용이 구토를 유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원효는 뇌의 작용을 깨달았 것이다. 분별심은 내가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알았챘을 것이다. 마음의 실체를 알고, 분별심이 생성되는 과정을 감을 잡았을 것이다. 석가의 가르침을 본질을 꿰뚫었는데, 당나라에서의 유학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금처럼 외국 유학이 좋은 이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원효는 거기에도 현혹되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있었기에 그는 "무애행'을 실천했다고 한다. 해골물 한 바가지가 기폭제가 되었지만, 깊은 학문과 지혜가 경험 축적의 내공이 없었다면, 기폭제는 무슨 결과물을 거창하게 낼 것인가. 무애행이라 함은 소위 말하는 탐욕과 분노 그리고 무지에서 벗어나 평온하고 자유로운 가운데 불법이나 국가법이나 법에 구애받지 않고 중생을 구제하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이해를 하면 된다. 나쁜 집착이 없고 심지어 좋은 집착도 없었다는 말이다. 심지어 깨달음에 이르고자 구구절절이 지켜야 하는 계율 법 등도 뛰어넘었다는 말이다. 혼자만 누린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전국을 돌며 전했고, 그래서 전국에 원효대사가 세운 절이 많다는 것이다. 법을 공부할 시간은 없어도, 1년에 몇 번이라도 절에 와서 중생들이 구도되기를 희망하면서 그는 부지런히 걸어 다녔을 것이다. 

 

 

요즘 깨달음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늘 잊히지 않던 원효대사의 해골물 설화(?)가 생각이 났다. 너의 마음이 문제의 근원인 것이다. 

 

자연사한 사람의 해골이라면 충분히 물이 담길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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