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은 정여사]
그렇게 오랫동안 정여사와 살았는데, 변변한 카드를 한 번 안 드렸다는 반성이 왔다. 정여사 앞에서 재롱을 부리고 사랑한다 말해주고 포옹은 하면서도 글로 적어서 마음을 표현한 적이 없었다. 88세 정여사는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학창 시절을 끝낸 사람이다. 그래서 글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을 가득 안고 있었던 것일까. 그런 가운데 2022년 88세가 되어 정여사는 카드를 받아 든다. 그것도 외국에서 온 꼬부랑글씨가 있는 카드를. 또한 생일 감사 카드도 아니고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는 영광을 누린다.
20여 년 전에 캐나다로 이민 간 고등학교 동기가 있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카카오톡 단톡방이 활성화되면서 서로 대화를 하는 친구가 보내온 카드이다. 그녀는 고등학교 동기이면서 또한 대학 동기라 대학 동기 단톡방에서 꽤 오랜만에 재회를 했었다. 같은 직업군이라 우리나라와 캐나다의 차이도 비교하면서, 20여 년 외국 생활이 주는 우리 문화의 차이점도 서로 주고받으면서 즐거운 단톡 생활이 이어지는 가운데.
올해 10월에 우리 정여사에게 큰 변화가 생겼다. 88세의 노인에게 무슨 큰 변화가 있을까. 벌써 몇 년 전부터 다리 근육 약화로 집에만 머무르는 중인데 말이다. 3년 간 투병 생활을 하던 큰 아들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어 큰 상심을 하였다. 캐나다로 이민 간 친구는 엄마가 젊을 때 돌아가셔서 엄마에 대한 애틋함이 남다르다. 또한 시어머니도 딸을 먼저 보내고 큰 아픔을 겪으셨다는 것을 알기에 정여사의 심중을 남들보다 깊이 헤아렸나 보다.
정여사에게 카드를 보내 위로해 주고 싶다고 주소를 달라고 한다. 그래, 마음은 나누고 살면 더 풍족해진다. 주소를 불러주면서 농담반 진담 반 말한다.
우리 정여사는 말이다. 독학으로 KBS MBC KTX에 나오는 알파벳 정도는 아신다. 또한 굿모닝 알러뷰 에스라인 브이라인 헬로우 굿바이 정도는 스펠링은 몰라도 이해하고 말도 하신다. 오, 땡큐도 아신다. 그리 알고 영어를 적당히 사용해라. ㅎㅎ
그리하여 정여사는 따뜻한 위로가 담긴 카드를 받아 든다. 물론 아들 잃은 슬픔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정여사에게 자신이 딸의 친구라는 것을 소개하고, 정여사의 팬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친구를 낳고 키워줘 고맙다는 인사가, 아주 짧게 정여사가 쉽게 읽을 수 있는 한글로 커다랗고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해 놓았다. 영어는 해석해 드리고, 한글은 돋보기 착용해서 직접 읽게 해 드렸다.
친구야!
우리 정여사가 그 마음 매우 감사하다고 전해달라 하신다.
고마워, 정말!!!
이 카드를 고르던 순간의 캐나다 친구의 마음을 읽어 본다. 카드 앞장에 이렇게 쓰여있다. Because you mean so much at christmas and always. (꼭 크리스마스여서가 아니라 항상 당신은 의미가 큰 사람이기에). 감사하다. 친구야.
또한 카드 안의 영어 내용도 고심해서 골랐을 그녀의 마음 씀씀이이다.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첫 사진: 크리스마스는 선물을 주고 받고 장식을 하는 게 다가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사람에게 다가가 내가 얼마나 그들을 아끼는 지를 알게 하는 그런 날이 되게 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알려주고, 그들의 매일매일이 소소한 행복으로 가득 하기를 소망해 주는 그런 것)
이렇게 정여사는 따뜻함이 가득한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아 들었다. 아들 잃은 슬픔을 딸의 소중함으로 위로를 해주는 그런 따스한 카드를 생애 첫 카드. 친구야 다시 고맙다. 위로가 되었다. 정여사에게. 소중한 경험이기도 하고. 물 건너온 카드라니!!!
https://jssande1.blogspot.com/2022/11/blog-post_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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