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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보다 더 가벼울 수는 없다: a very simple Thought on heavy Topics
HERstory 우리 정여사

태풍이 지나갔다: 88세 할머니의 설사

by 전설s 2022.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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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갔다: 88세 할머니의 설사]



간이변기를 청소하고 정리를 하는데 침대에 몸을 누이고 있던 정여사의 말소리가 들린다. 건망증 심한 정여사라 의미 파악이 안 되는데 설사 이야기일 줄 어떻게 알았으랴?


?? 태풍이 지나갔다


오늘이 추석 마지막 연휴일. 힌남노는 포항을 강타하고 추석 전에 지나갔다. 기억도 희미한 정여사가 이제야 그 얘기를 하나 싶은 의구심이 살짝 일었으나, 또 태풍이 온다는 소식과 뉴스가 티브이에서 흐르고 있어서 다음 태풍 이야기인가 싶어.


?? 응. 아!!! 또 온다고...
?? 아니, 그 말이 아니고 나에게 태풍이 지나갔다.


아!!! 설사 이야기구나.


주석 전전날 전을 드셨는데, 맛나서 평소보다 이 드신 듯하다. 전을 매우 좋아하시는 정여사이지만 요새 밀가루 음식을 그다지 접하지 않으셨다. 옛날부터 빵도 맛만 보시고 그것으로 밥을 대신하는 것은 싫어하셨다. 그런데 전 부침으로 식사대용은 허락하실 만큼 좋아하신다. 그런데 과식일까? 밀가루가 갑자기 많이 들어와서 장이 부담이었을까? 장이 탈이 났다.


밀린 마른 변이 빠져나간 것까지는 시원하고 좋았는데 설사가 이어진다. 추석 연휴라 가족들이 1박 2일로 2박 3일로 지내다 가야 하는 상황인데, 병도 난감하고, 정여사도 나도 난감하다.


몇 년 전에 빈뇨 걱정으로 기저귀 팬티와 속 기저귀를 꽤 많이 샀다. 그게 반 이상 남아 있다. 사용하기로 결정. 변의가 와도 급히 화장실로의 이동이 원활하지 않으니 가족이지만 손님이 있을 때는 뒷정리가 난감하다. 이불에 방에 변기에 흘리고 다니시니. 청소와 냄새를 최소화하기 위해 추석에는 기저귀를 사용하기로 했다.


멎지 않으면 병원을 바로 가야 한다. 88세 노령. 속 기저귀를 바꾸면서 보니까 항문을 조금만 건드려도 묽은 변이 나온다. 그런데 완전 물 설사는 아니다. 뭐지. 선홍색 피도 없고 변은 비교적 정상적인 색깔이다. 흑변이나 홍변이 아니다. 물 설사도 아니다.


덜컥 걱정이 앞선다. 괄약근이나 신경계 문제면 큰일이다. 사흘 정도만 기저귀를 하는데도 속 기저귀를 자주 갈지 않으면 엉덩이에 피부병이 생기겠다는 위험이 감지된다. 변이 항문 근처로 번져서 기저귀가 완벽하게 흡수하지 않으면 습도와 세균이 면역력 약한 할머니의 항문과 엉덩이 피부를 망가지게 하기는 식은 죽먹기 이겠구나 하는 판단.


속 기저귀를 갈면서 다시 보아도 괄약근이 제대로 작동을 하는지, 정여사가 변의를 느끼면 항문 괄약근과 신경이 연결은 되는지 안 되는지 걱정될 만큼 자극만 주어지만 변이 새어 나온다. 설사가 멈추더라도 변실금이 되면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겠구나...


3박 4일을 고생하시고 4일째 밤부터 설사가 잡힌다. 연휴 지내고도 차도가 없으면 병원 가야 하는데, 멈추었다.


그 와중에도 정신은 말짱하셔서 몸 상태를 물으면 다 답하시고, 스스로 음식을 거부하시고, 미음 먹겠다, 죽 먹겠다 결정도 하신다. 물론 탈진 방지를 위해서 따뜻한 물과 미네랄 소금을 서너 시간 간격으로 꾸준히 먹였다. 종합영양제로 기본 비타민과 미네랄도 보충. 하루는 정말 굶고 하루 반은 미음을 먹었고 이제는 죽을 드신다. 내일쯤 일반식을 생각 중이다.


설사 이후엔 대체로 변비가 이어진다. 변은 빠져나가고 물도 빠져나가고. 변비가 오기 좋은 조건이다. 어르신들은 장 운동이 활발하지 못해서 변비가 되기 쉬운 상태이다 항상. 예방을 위해 물 섭취를 관리해야 한다 적당량의 소금과 마그네슘도.


항문 괄약근이 정상인지, 신경 통신은 이상이 없는지 최종 점검은 변이 한번 나와야 한다. 변의를 느끼는지. 느끼고 제 때에 화장실로 이동을 했는지, 그리고 변이 나왔는지. 변의 색과 모양은 어떠한 지... 이 모든 것이 확인이 되면 다 나았는지에 대한 최종 판단을 해 볼 수 있다.


초롱초롱해지던 정여사의 눈빛. 자기 결정권. 내 말을 이해하고 답하는 정신력. 아직 그녀에게는 살 의지가 있다. 추석에 자식들과 손주들이 보고 싶었는데 많이 못 보았다고 서운해하시는 대화를 하고 있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정여사의 변을 조신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늘 보는, 몇 년째 관찰하는 정여사의 변이지만 이번엔 더 기다려진다. 정여사!!! 수고했소!!!


정여사가 좋아하는 거실 모퉁이 정원의 꽃나무. 오래 감상하셔야죠. 태풍은 지나갔다. 마무리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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