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키스만 50번째 vs 부고만 23일째]
한 2-3년 전부터 정여사에게 건망증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2-3년 전이면 나이 85세 정도이니 뇌도 이제 늙을 만하지 않은가. 그러나 초기에는 치매인가 싶어서 무척 조마조마하기도 하였다. 국가 치매 센터에 가서 검사를 받으니 85세 치고는 정상이라고 판단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검사를 하면 좋았겠으니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치매센터도 쉬고 휠체어로 움직이는 몸이라 치매 검진 센터에 다시 가지는 못했다.
치매 초기의 인지 장애는 없는 듯하다. 우리 젊은 사람도 휴가를 내고 며칠 집에 있다보면 요일과 날짜가 헷갈리는데, 몇 년을 집에만 있는 88세 할머니가 날짜와 요일을 기억해 낸다는 것은 매우 소중하고 어려운 일이다. 치매를 의심했을 그 당시에는 이사를 와서 새 환경이 낯설어서 그랬을 것이라는 판단을 이제야 한다. 그래서 그때, 요일과 날짜를 기억하려 하지 말고, 요일과 날짜를 알아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날짜와 요일은 헷갈리지 않고 알아낸다.
그런 정여사이지만 건망증은 피해갈 수가 없다. 점심 메뉴도 잊고 금방 말한 것을 또 묻고 또 묻는다. 살살 눈치를 보면서 묻는다. 사소한 것은 절대로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했다. 아주 중요한 것이라도 기억해 주는 것이 매우 감사하다. 오늘 늦으니 저녁 준비해 놓은 대로 드시라.... 이런 것은 기억을 한다. 물론 그 시간에 일깨우는 전화를 해 드리기도 하지만.
큰 아들의 부고를, 그 아들이 사망한 지 2주일만에 알렸다. 정여사의 상심이 클 것을 염려하여, 우리가 케어할 준비가 되었을 때 알리기 위함이었다. 일주일 간을 매 순간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어 묻고 또 물으신다. 자고 일어나면 물으신다. 식사를 하시다가도 물으신다. 말씀드린 지 오늘이 23일째.
처음엔 질문만/다음엔 메모를 해 달라고 해서 메모를 해서 침대맡에 두었다/그런데 그 메모가 너무 간략하여 또 물으신다./안되겠다 싶어서 구체적으로 메모를 다시 해서 침대 머리에 붙여 둔다/그런데 이제 사실은 파악이 되었는데/이유와 경과를 매일 물으신다.
그래서 저 영화에서 처럼 한 지가 일주일이 되어 간다. 주인공 남자는 자고 나면 기억이 없는 아내를 위하여, 그간의 일을 비디오로 만들어 그녀가 일어나자 마자 보게 하여 기억을 가지고 그 하루를 시작하게 한다. 나는 정여사를 위하여, 아침에 잘 잤는지 문안 인사를 하면서, "큰 아들이 어찌어찌하여 어찌 되었고, 어떤 경과를 거쳐서 어떻게 장례를 하고 유해는 어디에 있다"는 요약을 말로 한다. 그리고 작은 아들과 딸과 손주들과 며느리와 잘 살자. 아버지도 아들이 와서 좋겠네. 아버지에게 보냈다 생각하자 라는 말로 하루를 시작하게 한다. 항상 응답은 그렇다. "나쁜 넘. 엄마를 두고..." 나의 답도 항상 그렇다. "맞아. 많이 나빠"
첫 키스만 50번째가 아니라 부고만 23일째이다. 올 연말까지는 그렇게 되겠고, 아마도 설이 되어 가족들이 오면 그 때 마무리될 듯하다. 큰 아들의 빈자리가 이제 실감 날게다. 나이로 인하여, 건망증으로 인하여 그리고 믿고 싶지 않아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미루고 미룬 그 사실(아들의 사망)을 최종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
자식을 먼저 보내는 부모의 상심은 너무 깊다. 88세의 할머니가 63세 아들의 사망 소식도 이렇게 받아들이기가 힘든데,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등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어찌 사나. 다시 실감하는 날들이다. 세상의 부모 마음. 부모보다 오래 사는 것도 매우 큰 효도라는 것을 다시 다시 기억하는 하루이다.
https://jssande1.blogspot.com/2022/11/blog-post_18.html
기억을 잃은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노트북/첫 키스만 50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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