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시간: 철학 시험 준비]
아침 출근길에 들을 동영상을 골랐다. 강사는 원래의 주제에서 곁가지를 쳐서 동양 철학을 하다가 서양 철학을 하다가 역사를 하다가 좋게 말하면 통섭의 과정처럼, 나쁘게 말하면 천방지축처럼 진행을 한다.
그리스 철학이나 독일 철학 등을 듣다 보니 아련하게 그리운 시간이 떠오른다. 철학 시험 준비 하던 시간이 떠오른다. 수업 시간도 매우 재미있었지만 시험 준비 과정이 참 좋았다.
중간고사는 덜한데 기말고사에는 반드시 강의마다 4-7명 정도로 팀을 짰다. 누군가 총대를 메는 사람이 나타나서 시험공부를 같이 하자고 한다. 기말고사 전에는 break time이라는 2 주일의 시험 준비 기간이 주어진다. 각자 이용하는 도서관이 다른 데다가 기숙사에서 하루 종일 공부하는 사람도 많아서 약속을 정하지 않으면 만나기가 어려워서 더더욱 팀을 짰는지도 모르겠다.
교수가 직접 시험 문제를 준다. 20여 문제를 주면, 개인당 몇 문제씩 나누어 맡아서 답을 준비한다. 자기가 맡은 문제를 발표하고, 주도적으로 토론을 이끌어야 한다. 빠진 부분이나 중요한 부분들을 제시하고 묻고 답하고 자신의 의견을 더해서 열심히 자기 주도적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에도 진지하게 참여한다. 그리할수록 기억에도 남고 정리도 되고 [오럴테스트] 연습도 되기 때문이다.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고등학생들이 토론 수업 준비를 하고, 시험 공부도 친구들끼리 구도로 한다. 물론 구두시험이 아니라 필기시험이라도 이런 방식으로 공부하는 것을 많이 본다. 자신이 공부한 것을 친구에게 열심히 설명하려고 애쓰는 공부 방식을 보면서 늘 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이 떠오르곤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부한 것을 말하고 표현하는 것을 많이 연습하지 않은 세대에 살았기에 이 방법은 참 새로웠다.
말로 하는 학습법은 매우 효과적이다. 진정으로 이해를 하지 않으면 말로 표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말하다 보면 자신이 약한 부분 혹은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저절로 파악이 된다.
철학 시험 준비는 과목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공부는 팀을 자야만 했다. 교수가 문제를 제시하지 않는 경우는, 선배들에게 기출문제를 획득하여 같은 방식으로 시험 준비를 했다. 혼자 준비하면 망하기 쉽다.
유난히 똑똑하고 뛰어 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는 이런 침별 시험 준비가 시간 낭비일 듯하였지만, 팀별 학습에는 빠지지 않고 와서 자신의 실력을 나누어 주었다. 나중에 보니 그 친구 학점이 거의 최고였다는 것은 기억이 난다. 고마운 친구였다. 생각해 보면.
문득 철학 관련 동영상을 보다가 아련하게 옛날의 그 시간이 너무 깊이 그립다. 그리고 아래 윗층의 같은 빌딩에 살면서 신학 토론을 했던 친구들도 그립다. 옛날은 항상 이렇게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마는가. 다시 그 강의실에서 강의를 듣고 싶네. 그 시절 교수들은 다 은퇴를 했을 것이고, 지금의 교수들은 독일 유수한 철학적 담론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강의를 하고들 있을까. 기회를 만들어 가보고 싶은 심정이다.
'Total RECALL'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만나다 (0) | 2024.06.15 |
---|---|
Eureka 240530←230831 (4) | 2024.05.31 |
독서의 불편함: 24년 지금 나의 상황에서 (0) | 2024.05.02 |
간화선 (看話禪): 화두를 가슴에 품고서 (2) | 2024.01.21 |
무위無爲라는 자유 (1) | 2023.10.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