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우리의 미래 Repo Man 리포 맨: 인공 장기 회수]
삶을 살아오면서 "각서"라는 것을 한 번도 쓸 일이 없었다. 공적인 이유가 있건 사적으로이건 혹은 재미로든 써 본 적이 없다. 아직 유언장도 쓰지 않았으니 공적으로 의미 있는 서류는 "사직서" 정도가 처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아주 오래전에 지인이 돈을 꾸가면서, 친한 사이일수록 차용증을 써야 여차한 경우에 보호받을 수 있다고 한 번 쓴 적은 있다. 다만 공증은 받지 않았고 돈을 돌려받았으니 아무 일없이 지나갔다.
남아있는 것은 [연명치료거부사전의향서]와 [유언장] 정도이겠으나 오늘의 주제는 [신체포기각서]이다. 드라마는 모든 연령대에 노출될 수 있어서 흔히 등장하지 않지만 영화에서는 단골로 등장하는 소위 신체포기각서.
[신체포기각서]는 사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이 발생할 때, 보증할 것이 빌린 자의 몸뿐일 경우, 신체 전체 혹은 특정 장기에 대하여 처분의 권리를 사금융기관에 주는 것을 말한다 법적 효력은 없다고 하지만, 사금융업자는 그것을 토대로 만행을 저지르는 설정이 보통이다.
영화 리포맨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인간이 불멸을 추구할 줄은 알았지만, 불멸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컨들. 불멸을 추구하기 위해 영화 아일랜드에서는 복제인간으로 장기를 준비하고, 앨터드 카본에서는 뇌의 복사품이 이 몸 저 몸을 옮겨 다니면서 불멸을 추구한다. 노인의 전쟁에서는 복제된 몸에 늙은 몸의 뇌를 이전한다. 불멸까지는 아니라도 한 생의 삶을 조금 더 연장하기를 바라는 보통 사람들의 소망 내지 욕구는 인공 장기의 개발을 낳았다.
위의 영화와 책이 SF인 반면에, 리포맨은 SF인듯하지만 가장 현실화 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로서 뭔가 섬뜩함마저 준다. 왜일까?
인간의 존엄성이나 소중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한 회사가 인공장기를 생산한다. 눈 심장 간 위장 피부 등등을 생산하는데 기능이 실제 장기의 역할을 능가할 정도이다.
사람들은 이제 인공 장기를 하나쯤 지니고 사는 삶을 영위한다. 경제적 여건이 되면 일시불로 사면된다. 경제적으로 지불 능력이 없어도 장기는 사용할 수 있다. 다만, 다달이 원금과 이자를 감당해야 한다. 미래판 고리대금업의 시작이다. 돈을 빌린 것이 아니라 인공장기를 사용하는 대신 사용료(원금과 이자)를 다달이 어김없이 지불을 해야 한다.
사용료를 내지 못하였을 때, 리포맨 Repo Man(인공장기 회수자)이 이용자를 추적하여 인공장기를 회수해간다. 회수해 가면서 그 이용자의 생명이나 죽음에 관하여서는 외면을 한다. 관심이 없다. 이용자는 인공 장기 대출회사의 이윤 추구의 목적이 이루어질 때에만 의미가 있다. 그 목적을 잃으면 즉시 버려진다.
신체포기각서는 쓰지 않지만, 사용료를 내지 못할 경우에 인공장기를 회수해 가는 것에는 동의서를 써야한다. 신체포기각서나 다름없지만 인공 장기 회수 동의서라는 것에는 신체포기각서가 주는 처절함이 없다.
미래판 고리대금업자의 모습이다. 사용료를 내야하고 그 이자는 비싸며, 연체되면 에누리 없이 회수해간다. 사람들은 한 달이라도 더 살아보려고 인공장기를 이용한다. 그러다가 여의치 않으면 그들은 죽음을 각오한다.
리포맨은 인공 장기를 회수함으로써 그 결과로 나타나는 그 인간의 종말에 관심이 없다. 빌려 준 인공 장기의 회수에만 초점을 맞춘다. 리포 맨은 그 일(달리 말하면 합법적 살인)로 인간성을 잃어가지만, 미래의 가능한 모습이 아닐까 싶어서 섬뜩하다.
인공장기가 그 한 축이고, 복제에 의한 장기 적출이 윤리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그나마 나은 것은 자기 체세포를 역분화를 한 다음, 필요한 장기로 재분화를 유도하여 만든 장기인데 그야말로 요원하다.
작년에 인간이 아니라 돼지에게서 장기를 적출하여 인간에게 심장이식을 시도한 바 있다. 이게 그나마 현실적인 생명 연장의 기술이다. 여기서도 윤리적 문제는 있겠지만, 리포 맨을 관람하고 나니 인공장기가 야기할 수많은 윤리 문제와 사회 문제도 만만치가 않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이익 중심의 사회, 이윤 추구가 인간의 존엄성이나 소중함을 능가하는 사회로의 이행을 막을 수 있을까 아니 얼마나 지연시킬 수 있을까? 리포 맨이 보여주는 인공 장기를 둘러싼 미래의 암울한 모습에, 문득, 주어진 만큼의 삶은 어떠한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자식도 부모도 나를 필요로 할지 모르지만, 주어진 천명대로 그냥 살고 가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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