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끝 : 미니멀 라이프: 사람]
전화번호가 너무 많았다. 폰을 바꾸면 사진과 전화번호는 새 폰으로 전송되는 것이 관례였다. 일단 받아놓고 불필요한 것들은 정리를 해야지 하고 마음 먹지만, 다음 폰으로 바꿀 때까지 그것은 실천되지 않는다.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폰의 메모리에서 전화번호가 차지하는 저장소는 한없이 초라한 정도이다. 그러니 굳이 저장하고 지우고 할 이유가 없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번호 하나에 담긴 그 사연들은 폰의 저장 가능량을 넘어선다. 우리의 영혼은 그 무게를 이길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차니즘은 몇 해 째 그 많은 연락처와 사연을 폰에 남는 것을 허용한다.
2020년은 카톡과 문자를 끊었다. 전설은 항상 먼저 안부를 묻는 사람이었다. 전화로 하는 수다를 정말 좋아하지 않았다. 용건만 간단히 하는 일은 카톡과 문자만으로도 충분한 삶을 살았다. 그것이 직업적 환경과도 맞았다. 전화를 주고받는 삶을 살진 않은 것은 꽤 오래되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삶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삐삐 이후로. 전화는 하지 않지만, 문자와 카톡으로 지인들의 안부는 항상 먼저 물었다. 2020년은 그것을 끊었다. 먼저 하지 않는 것으로. 그리고 문자와 카톡이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과는 어차피 원활한 소통은 어려울 것을 알았다.
2021년은 전화번호를 삭제하였다. 아니 폰을 변경하면서 이전하지 않았다. 과거를 통째로 정리하는 마음으로. 지금부터 걸려오는 전화만 저장하는 것으로 작정하였다. 전화만 오면 [누구십니까? 혹은 어디신지요?]하는 진지한 나의 응답에 다들 황당해한다. 자신의 번호를 외우지 못하는 섭섭함을 넘어서 번호가 저장되어 있지 않음에 당황한다. 아니 삭제되었음에 더 당황한다. 문자와 카톡이 적성이 아니면 전화라도 해야 하는데, 한 동안 전화번호 없이도 서로 불편함이 없는 사이라는 것을 매일 확인하면 살아가는 2021년이었고, 아마도 2022년까지 진행이 될 듯하다.
갈 사람은 가고
올 사람은 온다.
새로운 삶은 그냥 오지 않는다. 시간과 장소와 사람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시작해보자.
시절 인연에도 끝이 있다는데, 다른 무엇에는 끝이 없겠는가.
안녕!!!
어느 트친의 글이 가슴에 남는 날이다.
진짜 끝은 고요하게 온다.
마음의 끈이 뚝하고 끊긴다.
그리고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영원히!
-어느 네티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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