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트라우마: 이라크에 투입된 미군 병사들의 아픔: 뉴 암스테르담/퍼니셔]
미국 관련 드라마를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메디칼 드라마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 드라마에서도 항상 이라크에 투입되었다가 전역하여 살고 있는 일반인이 된 병사가 나온다. 병사였던 일반인이 나온다고 해야겠구나. 이제는 군인이 아니라 보통 사람의 삶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으니 말이다.
미군이 이라크에 약 20년에 걸쳐 주둔하였다가 지난 8월에 철수를 했다. 그토록 오랜 기간 주둔을 했으니 비록 모병제이기는 하나 스쳐 간 미군이 얼마나 많겠는가. 인간에게 아무리 그 권한을 주어도 정신적 트라우마로 남는 것이 "살인에의 기억"이다. 가장 나쁜 것은 "죽일 이유가 없는 살인을 명령에 의해" 하였을 경우와 죽일 이유가 있는 살인이라도 그 횟수가 거듭되면 인간 정신의 고귀함이 말살된다는 것이다.
퇴역을 한 미군은 사지가 멀쩡하지 않아서 후유증을 가지고 살거나 위에서 말한 정신적 트라우마로 정신 생활이 피폐한 재로 살아가게 된다. 운이 좋아서 꾸준히 정신과 영역의 세션에서 치료를 받는다면 그나마 행운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전쟁의 괴로움으로 술을 먹다가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알코올 중독자 치료 센터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굳이 전쟁이 싫어서 미군의 전쟁 트라우마를 찾아 본 것이 아니다. 미국 드라마를 무심히 보다가 계속 이런 현상이 보이니, 정치가 미국인의 삶에 끼친 해악이 크다는 것을 눈치채었을 뿐이다. 미군이 전 세계에 전쟁으로 끼친 해악을 욕해 보기는 하였으나 제나라 국민들인 미군들에게도 낀 해악이 다른 나라에 비해 결코 더하지 않음을 보게 된다.
인간의 삶이란 이런 것인가. 투쟁이 우리의 본질이었던가. 정치가 우리를 이롭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우리가 휘둘리고 있게 하는 것을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는가. 정의를 실천하고자 인간 정신의 말살을 미처 살피지 못하였는가. 애초에 살필 마음이 없었던 것인가. 전쟁에 직접 가는 자와 명령하는 자와의 괴리감이 이런 결과를 낳았으리라.
역사는 고귀함의 나열이 아니다. 우리 인생도 고귀함의 꾸러미에 놓여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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