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은 가라! Our souls at night 밤에 우리 영혼은]
직접 경험보다 간접 경험을 더 살다가 가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 뭐든 몸으로 부딪치며 체득하면 더 좋았겠지만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이 있어야 하는 법. 체득한 사람에게만 경험의 깊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사건에 관하여 얼마나 다각도로 접근하고 관찰하고 음미하고 질문을 지니고 살았는가에 따라 경험의 깊이와 넓이가 달라진다. [Our souls at night. 밤에 우리 영혼]이라고 번역된 영화를 만났다.
70세가 넘은 어쩌면 어른 사람들의 일상을 다른 영화이다. 은퇴 시간을 재정적 어려움 없이 보낼 수 있는 은퇴자의 남은 삶에서도 한참을 더 살아버린 사람들. 직장에 얽매여 있다가 누리는 은퇴의 즐거움, 해방, 그리고 자발적인 자원봉사 등에도 끼일 수 없는 그런 어른 사람들. 그런 데다가 배우자와도 사별한 평범한 어른 사람들,
제목을 [밤에 우리 영혼은]이라고 번역을 해 두었지만, 실제 느낌은 [노년의 삶/노년의 밤] 정도이겠다. 외로움이 진하게 느껴지는 제목이다. 아이들이 아침이면 청년들은 점심 장년들은 저녁. 밤이란 매우 매우 오래 산 사람들이라는 뜻이지 않겠나. 그리고 하루 중의 밤은 귀가후에 야유를 넘어서 자야 할 시간이고 내일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
밤은 바로 어른 사람들이 위치이다. 인생의 마지막, 하루의 끝. 그리고 특별히 할 일도 준비할 일도 없는 내일을 위하여 힘겹게 자야 하는 시간.
70대 여자는 길 건너 이웃집 70대 남자에게 제안을 한다. 이웃으로 살아 온지 40년이 넘었고 각자 사별했고 아이들은 모두 집을 떠났다. 가족이 함께 살았던 각자의 전원주택엔 추억만 방마다 남아있다. 삶의 추억들이 창고에도 가득하다. 그토록 오랫동안 살아왔고 이웃으로도 살았지만 목례만 했던 정도이다.
밤에 같이 잠을 자자고 제안한다.
노인이 되니 잠들기가 너무 힘이 든다. 모든 노인이 그러하니까. 그 잠들기까지의 지루하고 건조하고 외로운 그 시간을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보내자. 무슨 대화가 될지는 모르지만 같이 해보자.
70이 넘은 여자 남자 어른은 어색하게 동침을 시작한다. 잠들기까지의 어색한 시간을 공유하기로 한 두 사람은 처음에는 할 말이 없었으나 차츰 차츰 일상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옛 배우자들에 대한 대화도 하고 아이들 양육에 관하여도 대화를 하고 점차 대화의 내용이 다양해지고 깊이도 더하게 되면서 친구가 되어간다.
이웃에 살아도 부부가 아이를 키우고 할 때는 완래가 있었지만 깊은 대화는 하지 못했고, 배우자 사별 후에는 남녀가 유별하니 또 대화를 할 이유가 없었기에. 서로 각자 사별 후에도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목례만 주고받은 사람들이 친구가 된 것이다. 그것도 밤에 잠만 자기로 한 친구. 커다란 침대에는 두 명이 누워도 아직 공간이 남는다. 늙으니 몸도 작아진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잠든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식사도 가끔하고 외출도 하고 산책도 하고 친구가 되어간다. 주위 사람들은 둘이 사귀냐고 쑥덕거리지만 70대의 남자 여자 어른들은 이제 그런 것에 신경 쓸 나이가 아니라 판단하고 서로에게 유익하고 행복한 방식으로 삶을 이어나간다. 동행자. 혹은 동반자 느낌으로.
그런 두 사람의 일상에, 여자 어른의 손자가 잠시 머무르게 되면서, 두 사람은 오히려 그 아이로 인하여 조용하고 늘 같았던 일상에 작은 바람이 분다. 아이를 돌본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자신이 없다 하면서도 서로 도우며 하다 보니, 아이도 행복하고 어른들도 행복한 시간이 늘어간다. 그러다가 개도 한 마리 아이의 친구로 데려오고. 즐거운 시간들이 흐른다.
결국에는 여자어른 할머니의 아들이 손자를 제대로 키우지 못하여 아들네로 옮겨 갈 결정을 하는 할머니. 이웃집 할아버지 남자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즐겁지만 그 옛날 아들에게 다 못 준 사랑을 손자에게로 주기 위하야 떠난다. 혼자 남겨지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급기야, 스마트폰을 할머니에게 선물로 소포로 부치게 되고, 그들의 스마트폰을 이용한 대화의 밤은 깊어간다. 몸은 따로 있어도 영혼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지속된다. Our souls at night은 그렇게 포근함을 유지해 간다.
아주 잔잔한 영화이다. 아무리 행복하게 살았어도, 아무리 착하게 살았어도, 아무런 티끌 없이 삶을 이어왔어도, 남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해도, 영혼의 밤은 오게 되어 있다. 배우자가 떠난 자리는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완전 혼자서, 죽음에 이르는 그 기간의 삶. 남아있는 잠들어야 할 밤의 시간들. 그들은 그 순간에 함께 할 영혼을 찾아낸 것이었다. 할머니의 제안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언젠가 그런 시절이 오면 그녀처럼 당당하고 씩씩하고 우아하게 제안을 해 보아야겠다.
'SERENDIPITY > DRAMAS & film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캄차카 반도가 생각이 났다: 옛날을 머금고 있는 땅 동토: [뉴 암스테르담] (0) | 2022.03.03 |
---|---|
전쟁 트라우마: 이라크에 투입된 미군 병사들의 아픔 :[뉴 암스테르담]/[퍼니셔] (0) | 2022.03.02 |
달마야 놀자: 발상의 전환 (0) | 2022.02.28 |
Maudie(우리말 제목은 "내사랑"):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사는 장애 여인 (0) | 2022.02.21 |
드래곤 볼과 앤트맨의 과학: 같을까? (2) | 2022.02.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