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백년해로가 부럽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횡단보도를 뛰어 건너서 숨을 멈추니 앞에서 누가 길을 막고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이다. 비는 온다고 해서 우산은 들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한 즈음이다. 나도 우산을 켠다. 앞에 동행하고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마도 백년해로 중에서 한 5-60년을 진행하고 있는 분들이 아닐까 싶다.
멈추어서 뭘 하고 계신가 보니, 지팡이에 비닐봉지를 매달고 계신다. 지팡이는 할머니의 것이고, 장을 본 비닐이 3개이다. 무거운 것 2개는 할아버지가 들고, 가벼운 요구르트 비닐은 할머니가 들었나 보다. 걸을 만했는데 비가 오니 우산을 들어야 해서 갑자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힘이 약한 할머니가 지팡이와 쇼핑 비닐을 한 손에 들 수가 없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아이디어일까 할머니의 아이디어일까. 두 분은 주섬주섬 각자 들고 있던 쇼핑 비닐을 지팡이에 끼우고 양쪽 지팡이의 끝을 각자 하나씩 책임지고는 저렇게 걸어가신다. 귀여우신 분들. 저렇게 좀 가시다가 할아버지의 오른손에 있던 쇼핑 봉투도 결국 지팡이에 끼워졌다. 이렇게 헤어졌는데, 할머니가 쇼핑백 3개가 끼워진 지팡이를 집까지 들 수 있을 만큼 힘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허리가 안 좋아서 든 지팡이일 텐데, 지팡이를 사용도 못하면서 짐의 무게와 우산의 무게까지 허리가 감당을 해야 하는데...
이런 아름다운 뒷 모습도 혼자서는 절대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것. 은퇴한 뒤에 집에서 그냥 시간을 좀 보내 본 남자 어른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친절한 풍경이 아닐까. 아내를 사랑하면 더욱이겠고, 사랑은 잠시 잊었다 해도 삶의 긴 여정을 동행해 준 아내를 연민하면 이런 풍경을 자연스레 연출할 수 있지 않을까. 아주 멋진 차를 타고 쇼핑센터에서 산 물품을 카터로 옮겨서 멋진 차에 싣고 오는 만큼의 사랑스러움이다. 단지 사용되는 도구가 다를 분 그 행위에 다름이 없다.
모든 사랑이 남은 커플들을 부러워 한다.
동행하는 동반자.
손을 내밀어 온기로 자신이 상대방을 케어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할 지어다.
사랑할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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