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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모든 것의 척도다. 그럴까. 돈이 아니고?

by 전설s 2021.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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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모든 것의 척도이다. 그럴까 돈이 아니고?]

모든 인간에게 공평한 기준이라는 것이 있을까?(사진은 pixabay)


인간과 인간이 만나서 대화를 시작하였을 때 그리고 뭔가를 도모하는  시절이  되었을 때 길이와 무게 등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인간의 몸이다. 거리는 열 걸음만큼, 한 뼘 두 뼘.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부피는 한 주먹만큼. 머리통만큼. 크기는 주먹만 한 얼굴만 한.  머리카락보다 백만 배 적은. 한 사람이 하루에 모내기할만한 모종의 량. 부피 거리 무게 등등을 표현한 말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은 인간 모두가 자와 저울은  없으나 자신의 몸은 지니고 다니기 때문에 가늠이 가능했던 까닭이다.

 


그러나 역사가 흐르면서 인간의 몸이라도 서로 똑같지 않으니 다른 방법이 고안되어 사용되다가 드디어  도량형을 전세계적으로 통일하게 된 것이 아닌가. 애초에 인간이 만물의 척도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대는 어떨까. 인간이 아니라 돈이 만물의 척도가 된 것은 아닐까. 무형의 것도 유형의 것도 돈이라는 것의 액수로 환원될 때 사람들은 더 관심을 가지고 더 실감하는 것은  아닐까. 환원을 정확히 해주면 더 실감하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환원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인간의 수고로움이나 봉사의 순간도 그것이 돈으로 환산을 하면 사람들은 달리 반응을 한다. 왜일까??

 

 

왜 사람들은 모든 인간의 노력과 수고로움 그리고 봉사의 순간을 덤덤해하다가 돈으로 환산을 하면 화들짝 반응을 하는 것일까? 다른 모든 가치보다 "돈"이라는 것은 매일 만지고 매일 사용하고 그것을 벌기 위해 들여야 하는 인간의 노고에 대한 감각이 있어서 아닐까. 자신의 땀이 "돈"으로 변화되는데 어떤 노력과 시간이 소모되는지를 체감하게 되어서가 아닐까.  그렇게 이해를 하면서도 늘 찜찜함은 남아있다. 왜 돈으로 환산을 해야 우리는 더 깊은 공감을 해야 한단 말인가?

 

 

에피소드 1. 

관공서에서 집 불허 관련 업무를 보았는데, 서류가 잘못 처리되어 다시 해야 한다고 연락이 왔다. 다시 처리를 하는 것까지는 이해를 했는데, 이 공무원께서 그 서류를 나보고 등기소에 가져다 주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의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서류를 잘못 처리한 것은 그들임에도 불구하고 등기소 심부름까지 무신경하게 넘기는 것이었다. 조용히 말했다. 

= 처리가 잘못되어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미안하지만 내가 집에서 출발한 시각부터 등기소 도착하여 서류를 넘기고 귀가 시까지의 시간을 보상하시라. 

= 예? (이 세상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 

= 내가 지금 시간당 얼마를 받는 직업에 종사를 하고 있으니 그것을 기준으로 보상하시라. 시간당 00입니다. 

= 아이고, 그 돈 줄 바에는 퀵 서비스를 부르는 것이 낫겠는데 뭘....

= 그러게요. 퀵 서비스를 부를 일을 왜 저를 불렀나요?

 

남의 시간 귀한 줄을 모르는 공무원께 시원하게 불편함을 선사하였다. 당연히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에피소드 2.

선거캠프에 봉사하는 일은 매우 방법이 많다. 캠프에 뛰어가서 중한 일을 맡기도 하고 자잘한 잡일을 맡기도 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방식으로 하는 사람도 있다. 편드에 큰돈을 넣은 것이다. 예를 들면 펀드를 조성하여 선거자금으로 사용하고 나중에 국가에서 환원받으면 이자를 부쳐서 돌려주는 방식이다. 현금을 큰 돈을 동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환영을 받았다. 그 사람이 그 큰돈을 다르게 사용하였으면 생길 이익을 지원하는 것이라 보면 된다. 그런데 나의 의문은 이것이다. 돈이 아니고 시간으로 자원봉사를 한 사람들은 그 시간이 얼마나 길었건 크게 서로에게 생각보다 감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면 큰 돈을 펀드에 넣은 사람 이상의 가격이 매겨질 텐데 그 부분을 놓치는 것이 매우 불편하였다. 펀드를 넣은 사람은 원금에다가 이자까지 받고 사람들의 열렬한 찬사를 받는데, 시간 투자로 기회비용을 지불한 사람들에게는 사람들의 감이 달랐던 것이다. 

 

 

에피소드 3. 

상가의 조문과 결혼식의 참가. 어느 한 기간 조의금과 축의금을 마음속에서 없애기로 하고, 상가에 가서 조문만 하고 결혼식에는 참가만 하고 온 적이 있었다. 아니 가급적 가지 않으려 했는데 어쩔 수 없이 가는 경우엔 마음만 가지고 갔었다. 그러나 인간 세상은 그런 게 아니었다. 마음으로만 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조문 후에는 친구들은 감사의 편지를 받았는데 전설에게는 오지 않았다. 왜일까? 조의금을 내지 않아서이다.  조의금을 내지 않고 시간만 낸 경우는 오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정신없는 상주가 일일이 기억을 못 한다는 뜻이겠거니 했다만... 세상은 그런 것이었다. 시쳇말로 마음은 가볍게 손은 무겁게 다녀야 환영받는 세상인 것이다. 

 

가장 실감나는 공감의 기준이 된 머니! (사진은 pixabay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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