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무감독 시험: 컨닝하기 난감]
아파트 상가에 심심찮게 아이스크림 가게를 보게 된다. 처음에는 아이스크림만 팔다가 이것저것 아이스크림과 함께 먹을 군것질거리의 종류가 늘어나서 좀 지나 보면 아이스크림가게가 아니라 과자가게가 되어 있을 때도 있다. 잡화점이 되지 않은 게 어딘가.
우리 아파트 상가에도 아이스크림 가게가 생겼는데 [ㅇㅇㅅㅋㄹ]이 그 상호다. 투명창으로 안이 훤히 보이니 아이스크림 가게인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 무인시스템이다. 각자 고르고 계산하고 안녕히 가셔야 하는... CCTV와 보안시스템이 당연히 작동하긴 할 게다.
사람이 없는 무인가게를 보니 중학교 시절이 생각이 났다. 3학년 때 교장선생님이 새로 부임하셨는데, 학급반장을 필두로 해서 전교 학생회장을 직접 선거로 선출하라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는데, 급기야 시험도 무감독제로 한다는 것이었다.
엥,
시험을 치는데 선생님이 감독을 안 하신다는 것이야?
아니, 그럼 컨닝을 어떻게 하나? 떠오른 첫 생각. 평생 시험에서 컨닝을 해 본적이 없는 나이지만. 모름지기 컨닝은 선생님이 등을 돌릴 때가 절호의 찬스인데, 그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하하.
쉬는 시간에 설합안의 모든 가방과 책들은 교실 칠판 밑의 공간으로 다 가져다 놓는다. 필기구만 남기고. 선생님이 시험지를 나누어 주고는 교무실로 되돌아 가신다. 우리는 시험을 치고, 혹시 질문이 있을 수 있으니 담당 과목 선생님이 중간에 1번 방문하신다. 물론 급박한 것은 방송으로. 시험 종료 직전에 오셔서 거두어 가신다. 끝.
희한하게도 컨닝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고, 선생님이 있을 때보다 뭔가 더 진지하고 성숙하고 기분이 매우 좋았다. 자율이라는 것이 주는 즐거움을 그때 처음 맛보았다. 스스로 규칙을 알아서 지켜라. 얼마나 우리 학생들을 존중하면 감독 없이 시험을 치게 하겠는가.
무감독 시험의 경험은 참으로 행복했다. 자긍심이 살아나고.
[플러스]
시험 치는 날은 책가방을 가지고 가지 않았다. 어차피 교실 앞에 두어야 할 것이다. 나는 쉬는 시간에 막판 공부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시험 끝나고 알쏭달쏭한 것을 확인해보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시간이 남으면 옆 짝지랑 같이 봐도 되었고.
완전 비밀인데, 단체 컨닝은 두어 번 했다. 객기와 재미로. 담당 선생님이 질문을 받기 위해 오실 때 친구들이 답을 다 알 수 있도록 질문을 하는 것이다. 물론 쉬는 시간에 공공연히 친구들에게 알리고... 무사히. 모두들 함구했다.
비공개구혼/전설/개인사/교육/중학교/무감독 시험/무인 아이스크림가게
'SERENDIPITY > MEDITATION &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서가 낳은 합리성 (0) | 2022.04.22 |
---|---|
호상: 가슴이 웅장했던 곡소리 (0) | 2022.04.19 |
머니 머니해도 블랙홀인 돈1: 대화의 이슈 (0) | 2022.04.16 |
평생소원: 겸손을 실천하기 (4) | 2022.04.15 |
와신상담 친구버전: 조지훈 명인과 내기 바둑 두기 (0) | 2022.04.14 |
댓글